아뢰야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आलयविज्ञान ālaya vijñāna)를 음을 따라 표기한 것이다.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한다.

또는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 또는 간단히 제8식(第八識, eighth consciousness)이라고도 한다.[1]

부파불교설일체유부 등에 따르면 마음[心]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6식(六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제시한다.[2][3]

이에 대해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 등에서는 마음8식(八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4]

즉, 마음에는 6식외에 이보다 더 심층의 의식인 제7식인 말나식과 제8식인 아뢰야식이 있다고 제시한다.

나아가 유식유가행파법상종에서는 아뢰야식이 우주만물의 근본이 된다고 본다.

즉, 아뢰야식에 포함된 종자로부터 우주의 삼라만상이 전개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을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 또는 뢰야연기(賴耶緣起)라 한다.[5][6]

아뢰야연기설에 따르면 개별 유정의 아뢰야식은 무시이래(無始以來)로부터 상속하여 각자 자신의 우주 만상을 변현한다. 즉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를 이룬다. 그리고 모든 유정의 각자의 우주는 서로 교섭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변현을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 교섭하여 공통된 변현을 이루기도 한다.

유정마음 (즉 8식)마음작용 · 승의근 등은 유정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변현이다.

그런데,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불공변(不共變)이라 한다.

산하대지(山河大地) 등은 모든 유정의 교섭에 따른 공통된 변현이다.

그런데,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공변(共變)이라 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연기설은 개인적(주관적) · 상대적 유심론(唯心論)이라 할 수 있다.[7][8]

깨달음증득의 측면 (즉 환멸연기의 측면)에서는, 아뢰야연기설에서는 유루(有漏)의 아뢰야식 가운데는 이미 선천적으로 무루의 종자[無漏種子]가 들어있다고 본다. 이 무루종자부처보살 등의 깨달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듣는 것을 증상연(增上緣)으로 한다. 그리고 그 세력이 성도(聖道)에 의해 강력해져서 번뇌장소지장을 마침내 끊고 전의(轉依)가 증득된다. [9][10][11][12] 번뇌장소지장3계윤회하게 하는 원인인 모든 번뇌다.

그 때 전식득지(轉識得智)가 이루어진다.

전5식성소작지(成所作智)로 변형된다. 그리고 제6의식묘관찰지(妙觀察智)로 변형된다. 그리고 제7말나식평등성지(平等成智)로 변형된다. 그리고 제8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완전히 변형된다.

이 상태는 곧 8식무루의 상태이며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이다.[1][7][13][14]

여러 명칭[편집]

8식 가운데 여덟 번째의 제8식을 칭하는 명칭으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은 그만큼 제8식본질적 성질[自相, 體性]에는 여러 분위(分位) 즉 여러 성격 또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15][16][17][18]

  1. 아뢰야식(阿賴耶識)
  2. 무몰식(無沒識)
  3. 장식(藏識) 또는 택식(宅識)
  4. 이숙식(異熟識) 또는 비파가식(毘播迦識)
  5. 아타나식(阿陀那識) 또는 집지식(執持識)
  6. (心)
  7. 소지의(所知依)
  8. 종자식(種子識) · 일체종식(一切種識) 또는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9. 무구식(無垢識) 또는 아마라식(阿摩羅識)
  10. 본식(本識)
  11. 초식(初識) 또는 초찰나식(初剎那識)
  12. 초능변식(初能變識)
  13. 제1식(第一識)
  14. 식주(識主)

아뢰야식[편집]

제8식을 칭하는 여러 명칭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이것은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ālaya vijñāna)를 현장이 음역한 것으로 신역어(新譯語)이다.[5]

다른 음역어로는 아라야식(阿羅耶識) · 아랄야식(阿剌耶識) · 아려야식(阿黎耶識) · 아리야식(阿梨耶識)이 있다.

줄여서 뢰야(賴耶) 또는 리야(梨耶)라고도 한다.[6]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ālaya vijñāna)에 대한 대표적인 의역어로는 진제(眞諦: 499~569)에 의한 무몰식(無沒識)과 현장(玄奘: 602~664)에 의한 장식(藏識)이 있다.

이 번역어에 담긴 뜻의 차이는 제8식에 대한 구역가신역가의 견해 차이를 보여준다.

즉, 이는 각각 제8식에 대한 지론종 · 섭론종 · 천태종 등의 구역가(舊譯家)의 견해와 법상종 등의 신역가(新譯家)의 견해를 대표하는 명칭이다.

무몰식[편집]

무몰식(無沒識, 산스크리트어: ālaya vijñāna, 영어: unsinkable consciousness,[19] consciousness with no loss, nondisappearing consciousness,[20] inexhaustible mind[21])은 진제(眞諦: 499~569)에 의한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ālaya vijñāna, 阿賴耶識, 아뢰야식)의 번역어다.

아뢰야식이 그 자신 안에 만유종자물질[物]과 정신[心]의 모든 종자를 굳게 보존하고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결코 이들을 잃어버림이 없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는 명칭 또는 번역어이다.[1][22]

진제산스크리트어 알라야(ālaya, 阿賴耶, 아뢰야)에서 아(ā · 阿)를 짧은 음으로 읽는다.

그래서 아(ā · 阿)를 무(無)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라야(laya · 賴耶 · 뢰야)를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뜻의 멸진(滅盡)으로 해석한다. 즉, 멸망하여 잃어버린다는 뜻의 몰실(沒失)이라 해석하였다.

이에 따라 진제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ālaya vijñāna, 阿賴耶識, 아뢰야식)를 멸진하지 않는 으로 이해한다.

또는 몰실하지 않는 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무몰식(無沒識)이라 번역하였다.

진제(眞諦: 499~569)에 의한 '무몰식(無沒識)'이라는 번역어를 아뢰야식에 대한 구역(舊譯)이라 한다.

그리고 현장(玄奘: 602~664)에 의한 '장식(藏識)'이라는 번역어를 아뢰야식에 대한 신역(新譯)이라 한다.[6]

진제의 해석과 번역에 따를 때, 무몰식으로서의 아뢰야식은 우주만유(宇宙萬有)가 전개(展開)되는 근본이 된다.

그래서 그 자신 안에 만유를 굳게 보존하고 유지하여 잃지 않는다는 성격을 지닌다.[1]

또한 무몰식이라는 뜻은 속생(續生) 즉 윤회와 관련되어 해석되기도 한다.

속생(續生)은 생의 이어짐, 즉 삶의 상속을 의미한다.

생유(生有) · 본유(本有) · 사유(死有) · 중유(中有)의 4유(四有)의 상속을 의미한다.

이 경우 무몰식4유(四有)의 과정 어디에서도 소멸되지 않으며 항상 존재하는 식을 뜻한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nondisappearing consciousness)'을 뜻한다.[20]

장식·택식[편집]

현장(玄奘: 602~664)은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ālaya vijñāna)를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음역하였다.[5] 또한 그는 알라야 비즈냐나장식(藏識)이라고도 의역하였다. 장식(藏識, 산스크리트어: ālaya vijñāna, 영어: store-house consciousness, store consciousness,[21][23] to store consciousness,[24] container consciousness[25])이란 번역어는 다음 의미를 갖는다.

현장(玄奘: 602~664)은 산스크리트어 알라야(ālaya, 阿賴耶, 아뢰야)에서 아(ā · 阿)를 긴 음으로 읽는다.

그래서 '알라야'라는 낱말을 '집(家), 사는 곳[住所], 저장소(貯藏所)'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이에 따라 아뢰야식을 장식(藏識)이라 번역하였다.[5]

'장(藏)'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감추다, 숨다, 곳간의 용도로 지은 집, 광'이다.[26]

영어로는 'store (저장하다), store-house (곳간, 창고), container (화물 수송용 컨테이너, 저장소)'이다.

현장(玄奘: 602~664)에 의한 '장식(藏識)'이라는 번역어를 아뢰야식에 대한 신역(新譯)이라 한다.

그리고 진제(眞諦: 499~569)에 의한 '무몰식(無沒識)'이라는 번역어를 아뢰야식에 대한 구역(舊譯)이라 한다.[6]


장식(藏識)은 세부 측면으로 능장(能藏) · 소장(所藏) · 집장(執藏)의 3가지 의미[義] 또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장식은 이들 가운데서도 집장의 의미 또는 측면을 강조하는 명칭이다.[15][16][17][18]

능장(能藏, 영어: storer,[27] operation of storage[28])은 제8식이 만유의 종자를 능히 보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소장(所藏, 영어: stored,[29] that which is stored[30])은 나머지 다른 7식(七識)이 선업악업을 제8식에 훈습하여 새로운 종자가 생기게 하거나 기존의 종자의 세력을 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집장(執藏, 영어: grasping,[31] that which is appropriated,[21] appropriated store[32])은 아집(我執)의 뜻을 나타낸다.

즉, 제7말나식이 항상 제8식(엄밀히는 제8식의 견분)을 자내아(自內我)로 오인하여 집착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 자내아(自內我)는 자신 내부의 영원한 자아 즉 내면의 '[我]'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집장아애집장(我愛執藏)이라고도 한다.[6]


성유식론》과 《성유식론술기》에 따르면, 뢰야3위(賴耶三位)를 제시한다.

뢰야3위(賴耶三位)는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 ·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를 말한다.

그런데 '아뢰야식' 즉 '장식(藏識)'이라는 명칭은 이 가운데 제1위인 아애집장현행위에서만 사용되는 명칭이다.


선악업과위상속집지위에서는 아뢰야식 즉 장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33][34]

즉, 집장(執藏)의 의미는 이 경우 이미 사라졌다. 그래서 사용되지 않는다.

이 경우 능장(能藏) · 소장(所藏)의 의미는 종자식(種子識) 등의 다른 명칭이 대신한다.

즉, 선업악업의 만유의 종자를 보관하고 훈습한다는 의미는 종자식(種子識) 등의 다른 명칭이 대신한다.[35][36]

선악업과위상속집지위불퇴전 보살부터 부처까지의 계위에 해당한다.

보살 10지 가운데 제8지부동지 보살부터 부처까지의 계위에 해당한다.

성문 · 연각2승4향4과에서는 아라한향아라한과성자부처계위에 해당한다.[6][37][38][39]

즉, 아나함과(즉 불환과)를 증득한 상태 또는 완료한 상태를 말한다.

부파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불환과3계 가운데 욕계를 벗어난 경지이다.

즉, 어쩔 수 없이 욕계윤회해야만 하는 상태를 벗어난 경지이다.

달리 말하면, 욕계속박끊은 경지다. 즉 욕계의 모든 번뇌를 끊은 상태다.

범부불환과를 아직 증득하지 못한 성자는 어쩔 수 없이 욕계로 다시 윤회해야 한다.

다만 가르침을 펼치기 위해 욕계로 의도적으로 윤회하는 경우는 예외다. [40]

현장 등의 신역가가 제8식을 '아뢰야식'이라고 부를 때는 위에 기술된 의미에서의 '장식'을 뜻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집장 즉 '말나식에 의해 집착되는 의식'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즉, 이는 아애집장현행위 라는 뜻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즉 '욕계에 윤회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는 뜻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이와 달리 진제 등의 구역가는 제8식을 무몰식이라고 의역한다. 따라서 강조하는 면이 다르다.[6]


그리고 장(藏)이라는 한자 대신 '집(house)'을 뜻하는 택(宅)이라는 한자를 써서 아뢰야식을 택식(宅識)이라 하기도 한다.

택식이 의미하는 아뢰야식의 성격은 장식(藏識)과 동일하다.[6]


이숙식·비파가식[편집]

이숙식(異熟識, 산스크리트어: vipāka vijñāna, 영어: consciousness differing in maturation,[41] differential maturing consciousness[21])은 제8식의 다른 명칭 가운데 하나다. 음역하여 비파가식(毘播迦識) 또는 비파가비약남(毘播迦毘若南)이라고도 한다.[42][43][44]

또 이숙보식(異熟報識) · 과보식(果報識) 또는 이숙심(異熟心)이라고도 한다.[45][41]

이숙식비파가식을 간단히 줄여서 이숙(異熟) 또는 비파가(毘播迦)라고도 한다.[38]


성유식론》 제3권에 따르면, 제8식은 능히 생사인기(引起)하는 선업 · 불선업이 다르게[異] 익어서[熟] 나타난 이숙과(異熟果)이다.

때문에 이숙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숙식이라는 명칭은 범부 · 2승 · 보살지위에서만 사용된다. 즉, 부처의 지위인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를 제외한다.

즉, 부처를 제외한 범부와, 유학 · 무학성자(4향4과성인), 그리고 연각(또는 독각), 그리고 10지보살에 대해서만 사용된다.

여래지에 대해서는 이숙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래지에서는 이숙무기(異熟無記)의 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46][47]

즉, 부처의 상태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번뇌물든 (業)이 아니다.

번뇌는 생사윤회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부처의 신업 · 어업 · 의업3업은 번뇌에 물든 업이 아니다.

즉 '불선 혹은 유부무기'에 의해 가려진 (業)이 아니다.

때문에 악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처의 제8식은 선업악업이 다함께 무르익어서 나타나는 총 결과가 아니다.

즉, 부처의 제8식은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3수로서의 이숙과이숙식이 아니다.

또는 낙수 · 고수 · 희수 · 우수 · 사수5수이숙과이숙식이 아니다.

달리 말해, 부처(識)은 윤회속박(識)이 아니다.

즉, 부처(識)은 원인면에서 보면 번뇌속박(識)이 아니다.

또 장소면에서 보면 3계속박(識)이 아니다.

그리고 경지면에서 보면 9지 또는 10지속박(識)이 아니다.


뢰야3위에서는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 ·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를 제시한다.

이 경우 이숙식(異熟識)은 특히 제2위인 선악업과위에 대해 사용되는 명칭이다.

뢰야3위의 제2위로서의 이숙식은 제1위 아애집장현행위번뇌장(즉 아집)단멸된 상태다.

따라서 오직 유부무기소지장(즉 법집)만이 존재하는 상태다.

그래서 불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부무기만이 존재하는 상태다.

즉, 선악업과위에서의 '선악업(善惡業)'은 아애집장현행위에서의 '선악업(善惡業)'과는 다르다.

또 그에 따른 이숙과도 제1위의 아애집장현행위와는 다르다.

선악업과위에서의 '선악업(善惡業)'은 '유부무기'을 말한다.

선악업과위에서의 이숙과도 그에 따른 총체적인 과보로서의 이숙과를 말한다.

이 상태는, 부처의 경지는 아니다.

그러나, 보살 10지에서 제8지부동지 보살 이상의 상태다.

성문4향4과에서는 아라한향아라한과에 해당하는 높은 경지다.[37][38][48]

그래서 무공용의 상태이다.[49][50][51][52]

아타나식·집지식[편집]

아타나식(阿陀那識, 산스크리트어: ādāna-vijñāna, 영어: maintaining consciousness[53][54], appropriating consciousness, clinging consciousness[55])은 산스크리트어 아다나 비즈냐나(ādāna-vijñāna)의 음역어다.,[56]

아다나식(阿陀那識)이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그리고 타나식(陀那識)이라고도 한다. 의역하여 집지식(執持識)이라고 한다.[57][58]

집지(執持)는 산스크리트어 아다나(ādāna)의 번역어다.

집지(執持)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붙잡아 유지한다'이다.

성유식론》 제3권 등에 따르면 아타나식 또는 집지식제8식 즉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이다.

유루 · 무루의 모든 종자신체[色根]를 유지해서 무너지지 않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59][60][61][62]

특히, 아타나식이라는 명칭은 뢰야3위 가운데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에 관련하여 사용된다

이 때의 아타나(阿陀那) 즉 집지(執持)는 오로지 순(純)무루종자만을 상속 · 유지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뜻은 오직 불과(佛果) 즉 여래지(如來地)인 부처의 경지에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무루 · 청정의 뜻에서는 아타나식은 제8식의 다른 명칭인 무구식(無垢識)과 동의어이다.[37][59][60]


한편, 구역가(舊譯家)의 입장은 위와 같은 법상종 등의 신역가(新譯家)와 다르다.

지론종 · 섭론종 · 천태종 등의 구역가(舊譯家)는 아타나집아(執我: ''라고 집착한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아타나식제7말나식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한다.[57][58]


한편, 상속식(相續識, 영어: continuing consciousness[63])이란 명칭은 아타나식(阿陀那識)과 동의어인 것으로도 사용된다.

달리 말해, 상속식은 문맥에 따라 제8식의 동의어로도 또는 제7식의 동의어로도 사용된다.[53][64]

세친상속식이라는 명칭이 제8식의 다른 명칭이라고 제시한다. 그래서 아타나식의 동의어라고 제시한다.

현장이 번역한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1권에 다음 내용이 있다. [65][66]

論曰。何緣此識亦復說名阿陀那識。執受一切有色根故。一切自體取所依故。所以者何。有色諸根由此執受。無有失壞盡壽隨轉。又於相續正結生時。取彼生故。執受自體。是故此識亦復說名阿陀那識。
釋曰。 ... 一切自體取所依故者。又於相續正結生時取彼生故。執受自體。用此為釋。謂由此識是相續識故。於相續正結生時能攝受生一期自體。亦為此識之所攝受。由阿賴耶識中一期自體熏習住故。彼體起故說名彼生。受彼生故名取彼生。由能取故執受自體。以是義故阿賴耶識。亦復說名阿陀那識

[論] 무슨 까닭에 이 식[제8식]을 또한 아타나식이라 이름하는가? 모든 감각기관[有色根]을 집수(執受)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자체가 취하는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모든 감각기관은 이 집수로 인해서 파괴되지 않고, 수명을 다할 때까지 따라서 전전하는가? 또한 상속해서 바로 생을 맺을 때에 그 생을 취하기 때문에 자체를 집수한다. 그러므로 이 식을 또한 아타나식이라 이름한다.
[釋] ... ‘모든 것의 자체가 취하는 의지처이기 때문’은 ‘또한 상속해서 바르게 생을 받을 때 그 생을 취하기 때문에 자체를 집수한다’에 대한 해석이 된다. 이른바 이 식은 상속식이기 때문에, 상속해서 바로 생을 맺을 때 능히 생의 한평생의 자체를 섭수함도 역시 이 식이 섭수하는 것이다. 아뢰야식 중에서 한평생의 자체는 훈습하여 머물기 때문이다. 그것의 자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 생’이라고 말한다. 그 생을 수용하기 때문에 ‘그 생을 취한다’고 말한다. 능히 취함으로 인해서 자체를 집수한다. 이런 의미 때문에 아뢰야식을 또한 아타나식이라 이름한다.

《섭대승론석》 제1권. 한문본 & 한글본


한편, 《대승기신론》에서도 상속식(相續識, 영어: consciousness of continuity[67])이란 명칭이 나타난다.

즉 《대승기신론》에서는 업식(業識) · 전식(轉識) · 현식(現識) · 지식(智識) · 상속식(相續識)의 5의(五意) 또는 5식(五識)을 설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상속식(相續識)은 아타나식(阿陀那識)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상속식과는 구별되어야 한다.[68][69][70]


대승기신론》의 5식에 관련된 전통적인 권위있는 견해로는 혜원(慧遠: 523~592) · 원효(元曉: 617~686) · 법장(法藏: 643~712)의 견해가 있다.

혜원은 《대승의장(大乘義章)》 등을 저술했다. 지론종 남도파에 속하는 지론사(地論師: 지론종의 교의를 주장하는 이)다.

혜원[71]5의 또는 5식이 모두 제7식에 해당한다고 본다.


원효업식(業識) · 전식(轉識) · 현식(現識)이 제8식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리고 지식(智識)은 제7식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리고 상속식(相續識)은 제6식에 해당한다고 본다.


법장원효와 마찬가지로 업식(業識) · 전식(轉識) · 현식(現識)이 제8식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식(智識)과 상속식(相續識)은 제6식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리고, 제7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72]


따라서 5의 가운데 하나로서의 상속식(相續識)이라는 명칭은 이 어느 입장에서도 제8식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본다.

즉, 5의 또는 5식에 대한 전통적인 권위있는 견해들에 따르면, 5의 가운데 하나로서의 상속식(相續識)이 제8식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아타나식집지식과 동의어라고는 해석되는 경우는 없다.

달리 말하면, 5의 가운데 하나로서의 '상속식'이라는 명칭에는 '집지식'이라는 명칭에서 뜻하는 것과는 다른 측면 또는 성질이 포함되어 있다.


[편집]

(心, 산스크리트어: citta, 팔리어: citta, 영어: mind,[73] consciousness[74])은 산스크리트어 치타(citta)의 번역어다.

질다(質多)라고도 음역한다.

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심의식(心意識)의 교의와 관련해서는 집기(集起: 쌓고 일으킴)를 뜻한다.

한편 부파불교대승불교심의식(心意識) 또는 (心) · (意) · (識)에 대한 교학의 입장이 있다.

여기에서는, (心)은 즉 집기(集起)를 의미한다.

이는 마음마음작용(심소법)을 비롯한 (身) · (口) · (意) 3업(三業)을 쌓고 일으키는 측면 또는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75][76][77][78][79][80][81]

여기에서 마음은 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의미한다.

한편 유식유가행파를 비롯한 대승불교에서는 (心) · (意) · (識)이 별도의 이라고 본다.

그래서 각각 제8아뢰야식 · 제7말나식 · 제6의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75][76][82]


마찬가지로, 《섭대승론석》 제1권과 《성유식론》 제3권에서도 다음처럼 제시한다.

제8식은 갖가지 으로 인하여 훈습종자가 대단히 쌓이고 모인 곳이다.

이처럼 모여진 종자들이 화합하여 하나의 화합[一合相]을 이룬다.

때문에 제8식(心)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집기(集起: 쌓고 일으킴)의 뜻을 종자와 관련시켜 해석하고 있다.[83][84][59][60]

그리고 《성유식론》에서는 이러한 집기의 뜻을 갖는 (心)이라는 명칭은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에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59][60][61]

이는 아타나식(阿陀那識) · 소지의(所知依) · 종자식(種子識)이라는 명칭들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뢰야3위와 관련해서는, 그 계위가 달라지더라도 (心)이라는 명칭의 본질적인 뜻에는 변화가 없다.

즉 '종자가 모여진 곳'이라는 뜻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어떠한 종자가 모여진 곳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그 뜻에 차별이 있게 된다.[85][86]


소지의[편집]

소지의(所知依, 영어: that on which all knowledge depends,[87] basis of acknowledge,[88] basis of the known[89])는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 의미가 깊다. 그러나 간략히 말하면 제8식의 다른 명칭이다.[90][91][92][93]

소지(所知)는 즉 알아야 할 바다.

염정(染淨)을 말한다. 즉 이는 (染)과 (淨)을 말한다.

이는 잡염법청정법을 말한다. [59][60]

보다 자세히 말하면, 소지(所知)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의타기성(依他起性: · 원성실성(圓成實性: )의 3성(三性)을 말한다.

이는 자신과 우주를 포함한 모든 존재 또는 법계의 3가지 성질[性] 또는 모습[相]이다.

이는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반드시 깨우쳐야[知] 할 내용[所]이다.


따라서 소지의는 이러한 3가지 성질 또는 모습의지처[依]를 뜻한다.

발동근거로서의 어떤 을 뜻한다.

즉 이들 3가지 모습을 가졌으며 유정발전 정도에 따라 이들 3가지 모습 중 어느 하나를 그 유정에게 내보이는 어떤 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제8식이다.[92][93]

《성유식론》에서는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라는 뜻의 소지의(所知依)라는 명칭은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에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59][60][61]

이는 아타나식(阿陀那識) · (心) · 종자식(種子識)이라는 명칭들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뢰야3위와 관련해서는, 그 계위가 달라지더라도 소지의(所知依)라는 명칭의 본질적인 뜻은 변화가 없다.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라는 뜻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어떠한 의지처발동근거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그 뜻에 차별이 있게 된다.[85][86]

종자식·일체종식·일체종자식[편집]

종자식(種子識, 산스크리트어: bīja-vijñāna, 영어: seed consciousness[94])은 제8식이 종자(種子)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는 명칭이다.[1][95][96]

[97]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산스크리트어: sarva-bīja-vijñāna, 영어: consciousness with all the seeds[21]· 일체종식(一切種識) · 일체종자심식(一切種子心識) 또는 일체종(一切種)이라고도 한다.[98][99][100][101][102]

여기서 종자(種子)는 만유가 발생되어 나오는 씨앗(bīja)을 뜻한다.


성유식론》 제3권에서는 세간 · 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지니기[任持] 때문에 제8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59][60]성유식론》 제2권에서는 "이것[초능변식, 즉 제8식]이 능히 일체법[諸法]의 종자를 유지해서[執持] 잃지 않게 하기 때문에 일체종(一切種)이라고 이름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법이 능히 두루 일체법[諸法]의 종자를 지닌다[執持]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103][104]

《성유식론》에서는 '세간 · 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지닌다'는 뜻의 종자식(種子識)이라는 명칭은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에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59][60][61] 이는 아타나식(阿陀那識) · (心) · 소지의(所知依)라는 명칭들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뢰야3위와 관련해서는, 그 계위가 달라지더라도 종자식(種子識)이라는 명칭의 본질적인 뜻에는 변화가 없다.

'세간 · 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지닌다'라는 뜻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어떠한 종자를 두루 맡아 지니고 있는 상태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그 뜻에 차별이 있게 된다.[85][86]

한편, 《섭대승론석》 제2권에서는 일체종자식종자는 별개라거나 별개가 아니라고 어느 한쪽으로 결정할 수 없는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에 있다고 제시한다.[105][106]

섭대승론석》 제2권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論] 또한 아뢰야식 안의 모든 잡염품의 법의 종자는 별개의 것으로서 머무는가? 별개의 것이 아닌가? 그것의 종자는 별도의 실제 사물이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안에서 머무는 것 역시 별개가 아닌 것이 아니다. 아뢰야식은 이렇게 해서 생겨나고 능히 그것을 생기게 하는 특수한 작용의 힘[功能]이 있다. 이것을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 이름한다.



[釋] 아뢰야식 안의 잡염품의 종자는 별개의 것인가, 별개가 아닌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만일 별개의 것이라면 그 모든 종자는 마땅히 부분마다 개별적이어야 한다. 아뢰야식의 찰나멸의 의미도 성립되지 않아야 한다.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선과 불선의 훈습의 세력으로 인하여 종자는 마땅히 선과 불선의 성품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무기라고 인정된다. 만약 별개의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종자가 많이 존재하겠는가?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따라서 두 가지 말은 모두 과실이 있다.

‘그것의 종자는 별도의 실제 사물이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안에서 머무는 것 역시 별개가 아닌 것이 아니다. 나아가 일체종자식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과실을 피하기 위해서 결정적으로 별개나 별개가 아님을 취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다’는 것은 이와 같은 품류로 인하여 생겨남을 말한다. ‘능히 그것을 생기게 하는 특수한 작용의 힘’이라는 것은 능히 잡염품의 법을 생기게 하는 특수한 작용의 힘과 상응하는 도리가 있음을 말한다. 그것을 생기게 하는 작용의 힘과 상응하기 때문에 일체종자식이라 이름한다.



이런 의미에 대해서 현실에서의 비유가 있으니, 마치 보리와 같다. 자신의 싹을 내는 데 작용의 힘이 있기 때문에 종자의 속성이 있다. 그런데 어느 때 오래 묵거나 혹은 불[火]과 상응하면, 이 보리는 결과를 내는 작용의 힘을 상실한다. 그때 보리의 모습은 본래와 같지만 세력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종자의 속성이 없게 된다. 아뢰야식도 역시 이와 같다. 모든 잡염법을 생기게 하는 작용의 힘이 있으며, 이 작용의 힘과 상응함으로써 일체종자식이라 이름한다.

— 《섭대승론석》 제2권 한문본 & 한글본

무구식·아마라식[편집]

무구식(無垢識, 산스크리트어: amala-vijñāna, 영어: undefiled consciousness[107][108])은 산스크리트어 아말라 비즈냐나(amala-vijñāna)의 번역어다.

오염이 없는 이라는 뜻이다. [109] 음역하여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고도 한다. 청정식(淸淨識) 또는 여래식(如來識)이라고도 한다.[110][111][112]

무구식 또는 아마라식제8식청정해진 모습인지 혹은 본래부터 언제나 청정한 별도의 제9식인지에 대해서는 유식유가행파의 소속 분파 또는 종파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구역가(舊譯家)인 섭론종 · 지론종에서는 별도의 제9식으로서의 무구식 또는 아마라식이 있다는 견해를 갖는다.

이에 대해 신역가(新譯家)인 법상종에서는 제8식청정해진 모습을 가리켜 무구식 또는 아마라식이라 한다.

제8식여래지에서의 모습무구식 또는 아마라식이라 한다.[110][111][113]


법상종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의 제3권에서는 무구식여래지에서의 제8식을 가리키는 다른 명칭이다.

이는 가장 청정해서 모든 무루법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무구식이라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무구식은 '하고 청정한 상태의 제8식[善淨第八識]'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명칭은 오직 부처여래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114][115]

[제8식을] 혹은 무구식(無垢識)이라고 이름하니, 가장 청정해서 모든 무루법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직 여래지에만 있다. 보살 · 이승 · 범부의 지위에서는 유루종자를 지니고 훈습을 받을 수 있으므로 선(善) · 청정한 제8식[善淨第八識]을 증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아래처럼 말씀한 바와 같다.



 여래의 무구식은
 청정하고 무루이며 계(界)이다.
 모든 장애에서 벗어났으며
 대원경지와 상응한다.

아뢰야라는 명칭이 허물이 크기 때문이고, 최초로 버리기 때문에 여기서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한다. 이숙식의 자체[體]를, 보살은 깨달음(菩提, 해탈도)을 증득할 무렵에 버리고, 성문과 독각은 무여의열반에 들어갈 때에 버린다. 무구식의 자체[體]를 버리는 시기는 없다. 유정을 이롭게 하는 행을 다할 때가 없기 때문이다. 심(心) 등(소지의 · 아타나식 · 종자식)은 모든 지위에 통하기 때문에, 버리는 지위를 뜻에 따라 말해야 한다.

— 《성유식론》 제3권. 한문본 & 한글본

본식[편집]

본식(本識, 산스크리트어: mūlavijñāna, 영어: root consciousness,[23][116] base consciousness,[117] causal consciousness[117])은 제8식이 제법(諸法)의 근본이라는 것을 뜻한다.

즉 제8식이 소우주(小宇宙)로서 개별 유정 등의 우주만유(宇宙萬有)의 근본 · 뿌리 · 토대 또는 '근원적 원인(cause)'이라는 뜻에서의 명칭이다.[6][7]



초식·초찰나식[편집]

초식(初識, 산스크리트어: prāg-vijñāna[118], 영어: initial consciousness, first moment of consciousness[119]) 또는 초찰나식(初剎那識)은 제8식의 다른 명칭이다. [6] 처음 찰나의 식이라고도 한다. [120][121]


여기에는 2가지 뜻이 있다.[122]

첫째는 속생(續生) 즉 윤회와 관련된 뜻이다.

여기서 속생(續生)은 생의 이어짐, 즉 삶의 상속을 뜻한다.

생유(生有) · 본유(本有) · 사유(死有) · 중유(中有)의 4유(四有)의 상속을 뜻한다.

유정이 지은 바 에 따라 사유(死有) 후에 중유(中有)로 이어진다.

그리고 중유(中有) 후에 다음 생5취(五趣) 가운데 어느 하나의 생유(生有)에서 태어난다.

이 경우 그 최초 찰나에 오직 이숙과로서의 제8식만이, 본식(本識)으로서, 현행한다.

그리고 이 제 8식이 이후 다른 7식이 전개될 바탕이 된다.

이 때의 제8식초식(初識) 또는 초찰나식(初剎那識)이라 한다.

그리고 (識)에는 요별(了別)과 집수(執受)가 있다.

여기서 요별(了別)은 사고 능력, 사유 능력을 말한다.

집수(執受)는 정서 능력, 감수 능력 말한다.

(識: 정신, 의식, 마음 → 유정)에는 연려(緣慮)가 있다.

여기에서 연려(緣慮)는 대상을 생각함, 사유와 정서의 능력,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色: 육체, 물질 → 무정물)과는 다르다.

때문에 유정연려(緣慮)가 없는 나무나 돌 등의 무정물(無情物)과는 차별이 있게 된다.[120][121][123][124][125]


둘째, 우주만물이 생겨나는 최초 1찰나에 오직 제8식만이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6]

이것은 특히 심생멸문(心生滅門) 측면에서는 근본무명에 의해 진여가 최초로 가려지는[覆] 것을 의미한다.

유전연기의 측면, 즉 미혹현상의 전개라는 측면에서 원성실성(圓成實性)이 최초로 가려지는[覆] 것을 의미한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이 최초로 움직여지는[起動: 業 즉 작용] 것, 또는 가려진 것 즉 움직여진 것을 의미한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무명업상(無明業相) · 능견상(能見相) · 경계상(境界相)의 3세(三細)를 설한다.

원효와 《종경록》의 견해에 따르면, 이 초찰나식(初剎那識)은 이 3세(三細) 가운데, 무명업상에 해당한다.[124][126][127]

무명업상은 줄여서 업상(業相)이라고도 한다. 또는 업식(業識)이라고도 한다.


한편 《능가경》에서는 진상(眞相) · 업상(業相) · 전상(轉相)의 3상을 설한다.

대승기신론》의 무명업상은 《능가경》의 3상 가운데 업상(業相)에 해당한다.[124][128][129][130][131]


한편, 초찰나식(初剎那識)이라는 낱말은 후찰나식(後剎那識)에 상대하여 쓰이기도 한다.

이 경우의 초찰나식전찰나(前刹那)의 을 말한다.

전찰나의 마음을 말한다.

이는 제8식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초찰나식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132]

초능변식[편집]

초능변식(初能變識, 영어: first transformation consciousness[133])은 줄여서 초능변(初能變, 영어: first transformation, first subjective change[134])이라고도 한다.

이는 제1능변식(第一能變) 또는 제1능변(第一能變)이라고도 하며, 제8식의 다른 명칭이다.[6][135]

한자어 능변(能變)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변화시킬 수 있음'이다.

능변(能變)은 산스크리트어 파리나마(pariṇāma)의 번역어다.

파리나마는 다음의 뜻을 갖는다.,[136][137]

  1. 변화(change), 변경(alteration), 변형(transformation), 발달(development), 진화(evolution)
  2. 익음(ripeness), 성숙(maturity)
  3. 음식의 변질(alteration of food), 소화(digestion)
  4. 시듦(withering), (색이) 점점 희미해짐 또는 바램(fading)
  5. (시간의) 경과(lapse [of time])
  6. (나이가 들어) 쇠퇴함(decline [of age]), 늙어감(growing old)
  7. 결과(result, consequence), 결말(issue, end)


유식학에서는 만법(萬法)이 식(識)의 전변(轉變)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제시한다.

여기에서 전변(轉變)은 자신을 포함한, 세력권 내의 갖가지 들을 바뀌고 달라지게 함을 뜻한다.

전변은 능변현(能變現)이다. 즉, 자신을 포함한, 세력권 내의 갖가지 들을 변화시키고 현행시킴이다.

또는 변현(變現: 이 경우는 所變現이 아닌 能變現의 줄임말임)이다.


(識)이 그 자신을 포함한 갖가지 (특히, 제8식의 경우는 종자)을 변화시킨다.[능변能變]

그리고 그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게 한다.[능현能現)]

이로써 만법이 성립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작용을 능변(能變)이라 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행위(작용)외에 행위자(작용자)를 따로 세우지 않는다.

따라서 '능변(能變)이라는 작용'은 곧 이러한 작용을 본질적 성질로 하는 어떤 들을 말한다.

유식학의 견해에 따르면 이 은 곧 8식(八識)이다.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제6의식 · 제7말나식 · 제8아뢰야식이다.

그리고 유식학에서는 8식을 '능변(能變: 자신을 포함한 갖가지 법을 변화시키고 현행시킴)'의 관점에서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그래서 제8아뢰야식초능변 또는 제1능변이라 한다.

그리고 제7말나식제2능변(第二能變)이라 한다.

그리고 전6식(前六識)을 제3능변(第三能變)이라 한다.

그리고 이들을 통칭하여 3능변(三能變)이라 한다.[138][139][140][141]

3능변이숙능변(異熟能變) · 사량능변(思量能變) · 요경능변(了境能變)이라고도 한다.

이는 능변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드러내는 명칭이다.

즉 어떠한 핵심적인 작용을 하는가를 드러내는 명칭이다. 이는 각각 제1능변 · 제2능변 · 제3능변에 해당한다.[139][142]

즉, 제1능변제8아뢰야식이숙(異熟)의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하는 이다.

제2능변제7말나식사량(思量)의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하는 이다.

제3능변전6식은 '대상요별[了境]'하는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하는 이다.

이 가운데 제3능변전6식에도 사량의 작용이 있다.

그러나, 이는 5위무심(五位無心)의 상태에서는 단절이 있다.

무상정 · 멸진정 등의 무심(無心)의 상태에서는 단절이 있다.

그러므로, 전6식이 항상 현행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전6식에서는 사량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삼지 않는다.[139][142]

달리 말하면, 제8식초능변이숙과(집기)라는 변화가 생기게 하는 이다.

제7말나식제2능변사량이라는 작용을 통해 평등한 지혜[平等性智] 혹은 4번뇌라는 변화가 생기게 하는 이다.

그리고 전6식대상에 대해 인식작용을 하여 대상에 대해 '모름'으로부터 '(요별)'이라는 변화가 생기게 하는 이다.

한편, 유식학에서는 '능변(能變)'을 인능변(因能變)과 과능변(果能變)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능변(因能變)은 원인[因] 즉 종자능변하는 경우다.

과능변(果能變)은 결과[果] 즉 자신을 포함한 현행능변하는 경우다.


제8식초능변인능변과능변의 뜻을 모두 지닌다.

제7식전6식제2능변제3능변과능변의 뜻만을 지닌다.[139][142][143][144]

제1식[편집]

제1식(第一識, 영어: prime consciousness, supreme consciousness, prime mind, supreme mind[21])은 제8아뢰야식이 제일 처음의 이 되는 것을 말한다.[6]

즉, 근본[本]에서 지말[末]로 헤아릴 경우 제8아뢰야식이 처음이라는 의미다.

이는 전5식 · 제6의식 · 제7말나식 · 제8아뢰야식의 순서로 헤아리는 것과는 반대다.


식주[편집]

식주(識主, 영어: lord of the intellect, mind[145][146])는 제8식의 다른 명칭이다.

식심의 주인[識心之主]을 뜻한다.[145][146]

식심(識心)은 6식 또는 8식, 즉 심왕(心王)을 말한다.

유식유가행파를 비롯한 대승불교에서는 8식설을 가진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 식심(識心)은 8식을 뜻한다.[147][148]

따라서, 식주(識主)는 8식의 주인[主], 주인공[主] 또는 왕(王)으로서의 제8식을 말한다.

즉, 제8식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心) 즉 마음[心, mind]을 말한다.[145][146]

종경록》 제47권에 따르면, 식주(識主)는 특히 제8진식(第八眞識)을 말한다.

이는 즉 청정한 상태의 제8식을 말한다.

전의(轉依)가 성취된 상태의 제8식을 말한다.

달리말해서, 대원경지(大圓鏡智)로서의 제8식이다.

모든 무루법의지처라는 뜻의 무구식(無垢識)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마음작용(심소법)을 자재(自在)로이 부리는 대왕'이라는 뜻에서의 심왕(心王)을 뜻한다.[145][149]

즉, 식주(識主)는 선종(禪宗)에서 '평상심이 곧 도이다[平常心是道]'라고 할 때의 평상심(平常心)을 말한다. 즉 마음[心, mind]을 말한다.

평상심이란 '일반인의 마음' 곧 '평균인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마음' 곧 '본래의 마음' 또는 '자연 상태의 마음'(natural mind)를 뜻한다.

번뇌에 물들어 있는 일반인의 마음은 평삼심 즉 평소의 마음 즉 정상적인 마음이 아니라 비정상의 상태이다. 붓다의 마음이 자연 상태의 마음, 본연의 마음, 정상 상태의 마음, 평소의 마음이다.

유식유가행파의 표현을 따르자면, 대원경지의 마음 또는 원성실성의 마음이 평삼싱이다. 나머지 마음 상태는 아직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만약 깨달음의 상태가 자연 상태가 아니라면 깨달음을 구하는 모든 노력은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아뢰야식의 성격에 대한 종파별 견해[편집]

지론종[편집]

중국 불교지론종(地論宗)은 세친의 《십지경론(十地經論)》을 소의 논서로 하여 성립된 종파이다.[150][151][152]

세친의 《십지경론(十地經論)》은 북위(北魏)의 선무제의 명에 따라 늑나마제(勒那摩提) · 보리류지(菩提流支) · 불타선다(佛陀扇多)가 508년부터 512년까지 4년에 걸쳐 번역하였다.


종파의 성립 후 늑나마제의 제자와 보리류지의 제자간에 견해 차이가 생겨났다.

그래서 상주남도파(相州南道派)와 상주북도파(相州北道派)로 분리되었다. 이를 약칭으로 남도파 · 북도파라 한다.

남도파늑나마제의 견해를 이어받은 혜광(慧光: 468~537)이 이끌었다.

북도파보리류지의 견해를 이어받은 도총(道寵: 생몰년 미상)이 이끌었다.

이후 남도파지론종의 정통파가 되었다.

비록 북도파도 일정 정도 융성했지만 남도파북도파에 비해 훨씬 더 융성하였다.[150][152]

지론종남도파북도파로 나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이다.

즉, 제8아리야식(第八阿梨耶識: ālaya vijñāna의 구역)이 진식(眞識)인지 아니면 망식(妄識)인지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남도파제8아리야식진식(眞識)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북도파망식(妄識)이라고 보았다.[152]

보다 구체적으로는, 남도파북도파의 견해 차이에 대한 현대 학자들의 학설에는 크게 다음의 2가지가 있다.[152]

첫 번째 학설은 다음과 같다.

남도파진여의지설(眞如依持說)을 가졌다. 그리고 북도파리야의지설(梨耶依持說)을 가졌다.

즉, 남도파제8아리야식진여라고 보았다.

그리고 진여연기설(眞如緣起說)을 주장하였다.

이는 진여로서의 제8아리야식근거로 하여 현상연기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북도파제8아리야식망식(妄識)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리야연기설(梨耶緣起說)을 주장하였다.

이는 망식으로서의 제8아리야식근거로 하여 현상연기한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 학설은 다음과 같다.

남도파8식건립설(八識建立說)을 가졌다. 그리고 북도파9식건립설(九識建立說)을 가졌다.

즉, 남도파제8아리야식청정식[淨識]으로 본다. 그리고 8식의 체계를 세웠다.

그리고 북도파제8아리야식망식(妄識)으로 보았다. 그리고 별도로 청정식[淨識]으로서 제9식을 세웠다. 즉 진여로서의 제9식을 세웠다.

그래서 진망화합의 9식(眞妄和合之九識)을 세웠다.

북도파는 이처럼 제9식을 세웠다. 그러나 아직 제9식아마라식(阿摩羅識, amala-vijñāna)이라고 칭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이상의 두 학설 모두의 경우에서, 북도파의 교학은 이후에 나타난 섭론종의 교학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북도파섭론종은 서로 쉽게 화합되면서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수나라 시대 초기에 북도파는 사라지고 섭론종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지론종으로는 남도파만이 남게 되었다.

그 후 남도파당나라 시대 초기에 세력 약화와 교학의 유사성으로 인해 섭론종화엄종에 흡수되었다.[150][152]

무상유식파·섭론종[편집]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비친 객관의 모습은 허구라는 관점이 있다.

즉, 주관에 대상의 모습이 형성된다. 그런데 이에는 고유한 본질적 성질이 없다는 견해다.

즉 마음에 내재(內在)하는 사물의 모습은 허구라는 견해다.

이는 경식구공진실유식설(眞實唯識說)의 입장이다.

경식구공(境識俱空)은 현상도 없고 마음(제8식)도 없는 곳에 진여(제9식)가 있다는 입장이다.

즉, 현상과 마음(제8식)이 모두 사라진 곳에 진여(제9식)가 있다는 입장이다.


인도 불교에서는 이런 입장을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라고 불렸다.

이는 미륵(彌勒, Maitreya: ?~?) → 무착(無着, Asaṅga: 300?~390?) → 세친(世親, Vasubandhu: 320?~400?) → 덕혜(德慧, Gunamati: 5세기 후반~6세기 전반) → 안혜(安慧, Sthiramati: 475~555 또는 510~570)로 이어진다.


이 유파의 학설은 진제(眞諦: 499~569)에 의해 중국에 전파되어 섭론종으로 발전하였다.[153][154][155]

섭론종진제(眞諦)가 번역한 무착의《섭대승론》을 소의 논서로 한다.

또한 이 논서의 주석서인 세친의 《섭대승론석》을 함께 연구하고 강술한 종파다.

진제(眞諦)를 개조로 한다.

무착의 《섭대승론》의 한역본으로는 진제(眞諦: 499~569)외에도 불타선다(佛陀扇多: fl. 508~539)의 번역, 현장(玄奘: 602~664)의 번역, 달마급다(達摩笈多: ?~619)와 행구(行矩: ?-?) 등의 공역본이 있다.

그런데, 섭론종진제의 번역을 바른 소의 논서로 삼는다.[156][157][158]

섭론종에서는 제8식을 망식(妄識)이라고 보았다. 즉 번뇌망상(煩惱妄想)에 의해 더럽혀진 (識)이라고 보았다.[159]

섭론종에서는 아뢰야식의 순정(純淨)한 곳을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 명칭하였다.

그런데 '아뢰야식의 순정(純淨)한 곳'이란 제8식과는 별도의 체성(體性)을 가진 (識)이라고 보았다.

즉 이는 단지 제8식의 일부가 아니다.

이에 따라 아마라식을 제8식과는 별도의 제9식(第九識)으로 세웠다.[156]

수나라 시대부터 당나라 초기에 걸쳐 화북(華北)에서 섭론종의 학설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현장(玄奘: 602~664)의 법상종이 일어나 섭론종유식설이 비판되었다. 그리고 이후 급속히 쇠퇴했다.[156]


유상유식파·법상종[편집]

한편 경공심유(境空心有)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이는 현상은 없으나 마음(제8식)은 있다는 입장이다.

즉 청정해진 마음(제8식)이 곧 진여라는 입장이다.

방편유식설(方便唯識說)의 견해다.

이는 인도 불교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와 중국 불교법상종의 입장이다.[1][153][160]


이는 외계의 일체를 의 현현(顯現)으로 본다.

그리고 유식관(唯識觀: 유식유가행파의 관법, 즉 유식유가행파의 수행법)을 익힌다.

그래서 제8아뢰야식의 본질을 개조(改造: 轉依)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해서 깨달음을 실현하려 하는 입장이다.


미륵(彌勒, Maitreya: ?~?) → 무착(無着, Asaṅga: 300?~390?) → 세친(世親, Vasubandhu: 320?~400?) → 진나(陳那, Dignāga: 480~540) → 무성(無性, Asvabhāva: ?~?) → 호법(護法: 530~561) → 계현(戒賢: ?~?) → 현장(玄裝: 600~664)으로 이어진다.


성유식론》은 이 계통의 교학을 위주로 편찬된 논서이다.


아뢰야 연기[편집]

전변[편집]

잠재적인 아뢰야식에서 7식(일곱 가지 식)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이 주관객관으로 분열되어 인식이 성립되는 경과를 전변(轉變)이라 한다.

그리고 아뢰야식에 의거 현실의 현상세계가 성립된다.

이런 내용을 아뢰야식 연기(阿賴耶識緣起) 또는 아뢰야 연기(阿賴耶緣起)라고 한다.[1]

아뢰야식과 7식[편집]

유식설에 의하면 우리들의 경험은 모두 의식(意識)으로 간주된다.[1]

외계에 있는 파동(波動)도 (眼: 視力)이 없으면 빛깔이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1]

즉 빛깔이 나타나는 것은 눈(眼)이 원인(原因)이다.

그리고 외계의 빛의 파동은 조연(助緣)에 불과하다.

(主觀 · 주관)에 갖추어진 힘의 요소만이 빛깔(客觀 · 객관)로 나타나는 것이다.[1]

따라서 눈은 빛깔의 주관적인 입장, 빛깔은 눈의 객관적인 입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양자는 동일한 한 존재가 주관객관(主客 · 주객)으로 분열된 모습에 불과하다.[1]

이와 같은 입장에서 유식설6식(六識)과 6경(六境)이 있음을 설명한다.

6식(六識)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식을 말한다.

6경(六境)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 경계를 말한다.

그리고 이 6식(여섯 가지 식)이 성립되는 근거로서 자아 의식(自我意識)으로서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을 제시한다.

또한 이들 7식(七識: 일곱 가지 식) 모두가 성립되는 근거로서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1]

유식설에 따르면, 아뢰야식은 심리적 기체(心理的基體)다

즉, 인간의 생명력에 타고난 유전적 요소나 여러 행위의 결과로서의 기억, 그리고 이에 의해 형성된 성격 등이 결합된 심리적 기체(心理的基體)다.

그리고 이 아뢰야식에 의거해서 인식이나 판단이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다.[1]

7식(일곱 가지 식)은 현재적(顯在的)이다. 이에 대해서 아뢰야식은 잠재적이다.

과거의 여러 행위, 즉 업(業)의 결과가 종자(種子)로서 감추어지고 보존된다.

그런 가운데 인연(因緣)이 합쳐지면 또다시 아뢰야식에서 7식(일곱 가지 식)으로 현행(現行: 현재화되어 나타남)한다.

또한 7식(일곱 가지 식)에 의한 경험은 (業)의 형태로 아뢰야식으로 훈습(熏習)되며 종자로서 보존된다고 제시한다.[1]


8단 10의문[편집]

세친은 인도 불교의 유식학의 총 3기 가운데 제2기의 논사다.

세친의 《유식삼십송》가운데 초능변식(初能變識)으로서의 아뢰야식의 (相)을 제시한다.

즉 아래 인용문에 나타나 있는 제2 ·· 4송이 초능변식으로서의 제8식본질 또는 성질을 밝힌다.


한편 인도 불교 유식학의 제3기의 논사로 유식 10대 논사들이 있다.

이들은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을 논술했다.

성유식론》은 현장(玄奘: 602~664)이 호법(護法: 530~600)의 학설을 위주로 하여 이들 논서를 합쳐 번역 · 편찬한 것이다.

성유식론》에서는 이 게송들을 제2 ·· 4권에 걸쳐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해석체계를 전통적으로 8단 10의문(八段十義門)이라고 한다.[161][162]


따라서 8단 10의문에 의한 해석은 유식 10대 논사들이 아뢰야식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였는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는 특히 호법 계통의 유상유식파의 견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153][163]

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 제8식)의 체상[相]은 어떠한가?
게송(『삼십송」의 제2 · 3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

《성유식론》 제2권, 한문본 & 한글본

8단 10의문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각주[편집]

  1.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중기 이후의 대승사상 > 아뢰야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아뢰야식: 阿賴耶識 알라야비즈냐나(alayavijnana)의 음사(音寫)로서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쓰며, 유식설은 우주만유전개(宇宙萬有展開)의 근본으로서, 만유를 굳게 보지하여 잃지 않기 때문에 무몰식(無沒識), 만유를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장식(藏識), 만유발생의 씨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유식설에 의하면 우리들의 경험은 모두 의식(意識)으로 간주된다. 외계에 있는 빛의 파동(波動)도 눈(眼:視力)이 없으면 빛깔이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즉 빛깔이 나타나는 것은 눈(眼)이 원인(原因)이며, 외계의 빛의 파동은 조연(助緣)에 불과하고, 눈(主觀)에 갖추어진 힘의 요소만이 빛깔(客觀)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눈은 빛깔의 주관적인 입장, 빛깔은 눈의 객관적인 입장에 불과하며, 이 양자는 동일 존재인 것이 주객(主客)으로 분열된 모습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식(六識)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六境)을 역설하고, 이 6식의 구석에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이, 또한 이들 7식(七識)이 성립되는 근거로서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이 역설되고 있다. 아뢰야식은 인간의 생명력에 타고난 유전적 요소나 여러 행위의 결과로서의 기억, 그리고 이에 의해 형성된 성격 등이 결합된 심리적 기체(心理的基體)로서 이에 의거해서 인식이나 판단이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다. 7식이 현재적(顯在的)인 데 대해서 아뢰야식은 잠재적이며, 과거의 여러 행위, 즉 업(業)의 결과가 종자(種子)로서 감추어지고 보존되어 인연(因緣)이 합쳐지면 또다시 아뢰야식에서 7식으로 현행(現行)하며, 또한 7식에 의한 경험은 업(業)의 형태로 아뢰야식으로 훈습(熏習)되며 종자로서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잠재적인 아뢰야식에서 7식이 생기며, 이것이 주객으로 분열되어 인식이 성립되는 경과를 전변(轉變)이라 하고 아뢰야식에 의거, 현실의 현상세계가 성립되고 있는 상태를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라고 한다. 이같은 외계의 일체를 식의 현현(顯現)으로 보고 그 유식관(唯識觀)을 익혀 아뢰야식의 본질을 개조(改造:轉依)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해서 깨달음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 유가행파의 입장이다."
  2. 권오민 2003, 67쪽.
  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77-78 / 1397쪽.
  4. 운허, "心(심)". 2013년 4월 5일에 확인
    "心(심): 【범】 citta ↔ 색(色). 심왕(心王)ㆍ심소(心所)로 나누면, 대경의 특수상(特殊相)을 인취(認取)하는 심소에 대하여, 의식 작용의 본체이며, 대경의 일반상(一般相)을 인지(認知)하는 정신작용을 말함. 이 심에 심(心)ㆍ의(意)ㆍ식(識)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며, 또 분류하여 6식(識)ㆍ8식ㆍ9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또 4심(心)으로 나누기도 함."
  5. 운허, "阿賴耶識(아뢰야식)". 2013년 4월 5일에 확인
    "阿賴耶識(아뢰야식): 【범】 ālaya vijñāna 8식(識)의 하나. 9식의 하나. 불교 유심론의 하나인 뢰야연기(賴耶緣起)의 근본 되는 식. 진제 등은 무몰식(無沒識)이라 번역하고, 현장은 장식(藏識)이라 번역. 앞의 것은 아(阿)를 짧은 음으로 읽어 아는 무(無), 뢰야는 멸진(滅盡)ㆍ몰실(沒失)이라 번역하여 멸진ㆍ몰실하지 않는 식이라 한 것이고, 뒤의 것은 아를 긴 음으로 읽어 가(家)ㆍ주소(住所)ㆍ저장소(貯藏所)의 뜻이 있으므로 장식이라 한 것임. 『성유식론』 제2에 의하면, ‘장’에 세 가지 뜻을 들었으니, (1) 능장(能藏). 만유를 내는 친인(親因)은 종자를 갊아 두는 식이란 뜻. (2) 소장(所藏). 8식 중 다른 7식에 의하여 염법(染法)의 종자를 훈습하여 갊은 식이란 뜻. (3) 집장(執藏). 제8식은 오랜 때부터 없어지지 않고 상주하므로 자아(自我)인 듯이 제7식에게 집착되는 식이란 뜻. 그러나 이 가운데서 주로 집장의 의미로 장식이라 하므로 아애집(我愛執)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이르면 아뢰야란 이름이 없어짐. 또 다른 이름으로 법상종에서는 불도 수행의 도정을 3분하여, 아뢰야(阿賴耶)ㆍ비파가(毘播迦)ㆍ아타나(阿陀那)의 이름을 붙임. 아뢰야는 제7 말나(末那)가 제8식을 자아의 존재처럼 집착하는 자리에서의 제8식의 이름. 비파가는 이숙(異熟)이라 번역하니 선악의 업으로 인하여 받은 자리에서의 제8식의 이름. 아타나는 부처님 지위에서의 제8식의 이름. 이미 자아의 집착이 없어지고 또 업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물질과 마음의 여러 법을 발현케 하는 종자와 5근(根)을 집지상속(執持相續)하는 자리의 제8식이므로 아타나(執持)라 함. 이식은 종자(이 식 속에 갊은 깨끗하거나 더러운 세계를 발현할 수 있는 세력) 5근ㆍ기세간(器世間)을 소연(所緣)으로 하기 때문에 각자의 아뢰야로써 우주 만유를 전개하는 근본이라 하고, 현상인 실재를 말하는 진여연기론에 대하여, 진여를 본체로 하고 진여에 즉하지 아니한 가유(假有)의 현상을 인정하여 뢰야연기론을 이루게 된 것임. ⇒장식(藏識)ㆍ제이능변(第二能變)"
  6. 星雲, "阿賴耶識". 2013년 4월 5일에 확인
    "阿賴耶識:  阿賴耶,梵語 ālaya 之音譯。為八識(眼、耳、鼻、舌、身、意、末那、阿賴耶等識)之一,九識(八識及阿摩羅識)之一。又作阿羅耶識、阿黎耶識、阿剌耶識、阿梨耶識。略稱賴耶、梨耶。舊譯作無沒識,新譯作藏識。或作第八識、本識、宅識。無沒識意謂執持諸法而不迷失心性;以其為諸法之根本,故亦稱本識;以其為諸識作用之最強者,故亦稱識主。此識為宇宙萬有之本,含藏萬有,使之存而不失,故稱藏識。又因其能含藏生長萬有之種子,故亦稱種子識。
     此外,阿賴耶識亦稱初剎那識、初能變、第一識。因宇宙萬物生成之最初一剎那,唯有此第八識而已,故稱初剎那識。而此識亦為能變現諸境之心識,故亦稱初能變。由本向末數為第一,故稱第一識。由於有阿賴耶識才能變現萬有,故唯識學主張一切萬有皆緣起於阿賴耶識,此亦為唯心論之一種。至於阿賴耶識為清淨之真識,或染污之妄識,乃佛學界所爭論之一大問題。
     據攝大乘論本卷上所引增一阿含經之說,及俱舍論卷十六所引契經(或即指雜阿含經)之說,可知阿賴耶思想之萌芽,源於原始佛教時代。據轉識論、攝大乘論本卷上、佛本行集經卷三十三、俱舍論卷十六、大毘婆沙論卷一四五等所舉,部派佛教時代之諸師皆依愛欲緣起說,將阿賴耶解釋為愛著、貪愛,或為愛、樂、欣、喜等。然至大乘佛教時代,則先後有馬鳴造大乘起信論以論釋阿賴耶識之義,彌勒、無著、世親等亦分別造論闡述唯識緣起說,以一切萬有皆緣起於阿賴耶識,遂成立唯識哲學之思想系統。其中,無著依阿毘達磨大乘經、解深密經等,解說第八根本識(阿賴耶識)為有情總報之果體,並於所著顯揚聖教論卷十七中,舉出八種理由以論證阿賴耶識之存在。
     無著於其另一著作攝大乘論本卷上,將阿賴耶識分為自相、因相、果相三種,並提出迷、悟二種境界,皆由熏習於阿賴耶識中之種子所生起,此即「種子熏習說」,亦即主張阿賴耶識為真妄和合之說。又世親著之唯識三十頌,至唯識分流時代,有二十八家之注釋,而較聞名者則為護法、安慧等十大論師之注釋;玄奘即以護法之注釋為主,糅合其餘諸師之說,編譯出成唯識論十卷,對我國、日本、韓國之唯識思想影響甚深。
     據成唯識論卷二所舉,阿賴耶識具有能藏、所藏、執藏三義。即︰(一)能藏,謂第八識善於自體中含藏一切萬法之種子。(二)所藏,指現行熏種子義而說,亦即此識為七轉識熏習諸法種子之場所。(三)執藏,謂第八識恆被第七末那識妄執為實我、實法,故又稱我愛執藏。
     此外,窺基根據成唯識論所述,於所著成唯識論述記卷二末,就自相、因相、果相三相,舉出阿賴耶識體之三位,即︰(一)我愛執藏現行位,指第八識之自相而言。因第八識自無始以來,恆被第七識愛執為我,故稱我愛執藏現行位。下自凡夫,上至七地以前之菩薩,或二乘中之有學聖者皆屬此位。(二)善惡業果位,指第八識之果相而言。因第八識係由無始以來之善惡業所招感之異熟果,故稱善惡業果位。此位通至十地菩薩之金剛心,或二乘之無學聖者。(三)相續執持位,指第八識之因相而言。此位通至佛果以及盡未來際。因第八識持色心之萬法種子,令五根不斷失,故稱相續執持位。依此,從凡夫以至佛之轉迷開悟,第八識為眾生所依止,故阿賴耶識又稱所知依。護法之唯識思想,由其弟子戒賢論師傳予玄奘,而盛行於我國。
     我國各宗派對阿賴耶識亦有多種說法,如︰(一)地論宗,以世親之十地經論為主要根據。主張阿賴耶識為真常淨識,視同於佛性如來藏。(二)攝論宗,以無著之攝大乘論為主要根據,乃由真諦所譯。主張如來藏緣起,阿賴耶識則為無常有漏法,乃一切煩惱之根本,並於前八識外加上阿摩羅識成為第九識,而以前八識為虛妄,九識為真實。然真諦亦參酌大乘起信論,而以阿賴耶識為無記無明隨眠之識,乃真妄和合之識,以第八識具有解性義為真,具有果報義為妄,故真諦之思想,乃融合真、妄二說而成。(三)法相唯識宗,以成唯識論為主要根據。玄奘為新譯唯識之代表,排斥如來藏緣起,主張阿賴耶緣起,並立五種種姓,說人、法二空。此種新論說,不僅使我國之唯識思想發生新的大轉變, 亦影響日本之唯識思想。〔入楞伽經卷二、卷七、決定藏論卷上、法華經玄義卷五下、中觀論疏卷七本、大乘義章卷三末、華嚴孔目章卷一、唯識了義燈卷四本〕(參閱「賴耶三相」6314、「賴耶四分」6314) p3676"
  7. 운허, "賴耶緣起(뢰야연기)".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賴耶緣起(뢰야연기): 법상종(法相宗)에서 우주의 삼라만상은 아뢰야식으로 연기(緣起)한다는 학설. 아뢰야식에는 모든 법을 내는 종자가 있다. 여기에는 선천적으로 있는 본유종자(本有種子)와 현행하는 모든 법이 후천적으로 새로이 훈부(熏付)한 신훈종자(新熏種子)가 있다. 이 두 가지 종자가 화합하여 차츰차츰 온갖 차별의 현상을 일으킨다. 이 연기론은 개인적이며 상대적인 유심론(唯心論)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생 각자의 아뢰야식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중생 각자의 아뢰야식으로 상속하여, 그 각자의 아뢰야식으로부터 모든 중생은 제각기 자기의 우주 만상을 변현한다 하고, 각자의 우주가 교섭함을 말할 적에는 공변(共變)ㆍ불공변(不共變)의 학설을 말한다. 산하대지(山河大地)와 같은 것은 각자의 공통한 변현이고, 각자의 심식(心識)ㆍ승의근(勝義根) 등은 각자의 독특한 변현이라 한다. 여기에는 공중(共中)의 공(共)ㆍ공중의 불공(不共)ㆍ불공중의 공ㆍ불공중의 불공이 구별이 있다. 이상은 미계(迷界)의 생기(生起)를 말한 것이다. 오계(悟界)의 생기에 대해서는 유루(有漏)의 제8식 가운데 이미 선천적으로 무루(無漏)의 종자를 간직하였고, 이 무루의 종자는 중생이 모든 불ㆍ보살의 교법을 듣는 힘을 증상연(增上緣)으로 하고 발전하여 마침내 무루의 증과를 얻는다고 함. ⇒유식소변(唯識所變)ㆍ유심연기(唯心緣起)"
  8. 星雲, "賴耶緣起".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賴耶緣起:  為四種緣起之一。法相宗之唯識說,主張一切萬法皆由阿賴耶識緣起。又作阿賴耶緣起、唯識緣起。賴耶,阿賴耶之略,意譯為藏,乃種子之義;意即微細不可知之一大藏識,能藏一切諸法之種子,係一切有情之根本所依。世間萬象皆為此藏識所執持之種子所現行,此稱「種子生現行」;於此同時,彼種子所現行之法,又於藏識中新薰其種子,此稱「現行薰種子」。如是,由本有種子、現行、新薰種子等三法之輾轉相生,互為因果而有「種子生現行,現行薰種子」之關係。(參閱「阿賴耶識」3676) p6315"
  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1b16.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此識與幾心所相應。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阿賴耶識無始時來乃至未轉。於一切位恒與此五心所相應。以是遍行心所攝故。"
  10.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 118 / 583.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이 식(識)은 몇몇 심소(心所와 상응하는가?1)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와 상응한다. 아뢰야식은 아득한 옛적부터 전의(轉依)2)를 이루기 이전3)까지 모든 지위에서 항상 이 다섯 가지 심소와 상응한다. 이것은 두루 작용하는 심소[遍行心所]4)이기 때문이다.
    1) 이하 아뢰야식과 상응하는 5변행심소(遍行心所) 각각에 관하여 설명한다. 이것을 심소상응문(心所相應門)이라고 한다.
    2) 전의(轉依, āśraya-parāvṛtti) 수행에 의해 ‘소의(所依:依他起)를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존재의 기체(基體:의타기성, 8식 혹은 持種依인 아뢰야식)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로부터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에 오염된 8식이 네 가지 지혜로 전환된다[轉識得智]. 곧 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전환된다.
    3)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를 가리킨다.
    4) 변행심소(遍行心所)는 8식 모두에 언제나 상응해서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다. 이 심소는 선(善) · 악(惡) · 무기(無記)의 3성(性) 모두에 두루 일어나며[遍起], 3계(界) · 9지(地) 어디에서나 작용한다[一切地]. 유심무심(有心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一切時], 변행의 5심소는 언제나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一切俱]. 이에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다섯 가지 심소가 있다."
  11. 운허, "轉依(전의)".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轉依(전의): 전은 전사(轉捨)ㆍ전득(轉得)의 뜻, 의는 소의(所依), 곧 제8식. 제8식은 의타기(依他起)한 것으로,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열반을 성(性)으로 삼고, 그 속에 번뇌장(煩惱障)ㆍ소지장(所知障)과 무루(無漏)의 종자를 함장(含藏)한 것이니, 전사(轉捨)한 것은 번뇌장ㆍ소지장이고, 전득(轉得)할 것은 보리ㆍ열반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의지할 곳인 의(意)를 의(依)라 한다. 제8식 가운데 번뇌장을 전사하고 그 실성인 열반을 전득하며, 소지장을 전사하고 그 가운데 있는 무루의 진지(眞智)를 전득하는 것을 2전의(轉依)의 묘과(妙果)라 한다."
  12. 星雲, "轉依".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轉依:  梵語 āśraya-parivrtti 或 āśraya-parāvrtti。轉所依之意。又作所依已轉、變住。轉,轉捨、轉得之義;依,指使染淨迷悟等諸法得以成立之所依。轉依,即轉捨劣法之所依,而證得勝淨法之所依。如唯識宗所說,由修聖道,斷滅煩惱障、所知障,而證得涅槃、菩提之果,此二果即稱為二轉依果,或二轉依妙果,此乃修習之最殊勝境界。又上記之中,所斷除之煩惱、所知二障,即是所轉捨之法;所證得之涅槃、菩提二果,即是所轉得之法。
     成唯識論卷九對「轉依」之解釋有二說:(一)依,乃染淨法之所依,即指「依他起性」;轉,乃轉捨「依他起性」上之「遍計所執性」,而轉得「依他起性」中之「圓成實性」。此係從三性上說明人之思想應如何自世間轉向出世間,對於緣起現象不應執為實我、實法,而應見到唯識真性。(二)依,指生死與涅槃所依之唯識真如;轉,乃滅除依於唯識真如之生死,而證得依於唯識真如之涅槃。此係直接從對唯識真如之迷悟之認識上,說明如何自生死苦而達涅槃樂。此種轉依,均通過阿賴耶識中種子之消長生滅來實現,轉捨煩惱障種子即轉得涅槃果,轉捨所知障種子即轉得菩提果。
     成唯識論卷十另又舉出轉依之四義,即:(一)能轉道,指證悟轉依之智;即壓制煩惱、所知二障種子之勢力而使之不作用之能伏道,及斷滅種子之能斷道。(二)所轉依,指轉依時之所依;有保持染淨法種子(持種依)之「根本識」,及為迷悟法所依(迷悟依)之「真如」。(三)所轉捨,指所應轉捨者;有所斷捨之二障之種子,及所棄捨之其餘有漏法和劣無漏之種子。(四)所轉得,指所應轉得者;有所顯得之涅槃,及所生得之菩提。此外,佛地經論卷七自「所轉得」之意來解釋轉依,而認為轉依乃法身之相。攝大乘論本卷下依所得位之別,將轉依分為六種,稱為六轉依。三無性論卷下則依修行階位而分為五種轉依,即:(一)一分轉依,謂二乘人滅盡我見我愛之故,得無漏相續而異於凡夫。(二)具分轉依,謂初地菩薩證得人法二空。(三)有動轉依,於七地以前之菩薩有出入觀,故稱有動。(四)有用轉依,十地以前之菩薩,其事未辦,不捨功用,故稱有用。(五)究竟轉依,至如來地,得圓滿究竟之果。
     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十列舉三種轉依:(一)得無學道,證法性,稱為心轉依。(二)所作已辦,道果究竟圓滿,稱為道轉依。(三)永離一切煩惱隨眠,稱為粗重轉依。大乘莊嚴經論卷三菩提品則舉出如來之轉依有十種功德之別。〔解深密經卷五、大乘莊嚴經論卷七、俱舍論卷十五、瑜伽師地論卷五十一、卷七十四、卷七十八、顯揚聖教論卷十六、解深密經疏卷九〕(參閱「六轉依」1312) p6618"
  13. 운허, "轉識得智(전식득지)".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轉識得智(전식득지): 유루(有漏)의 8식을 돌이켜[轉] 무루(無漏)의 8식과 상응하는 4지(智)를 얻는 것. 견도위(見道位)에 들어갈 때에 제8식을 돌이켜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얻고, 제7식을 돌이켜 평등성지(平等成智)를 얻고, 제6식을 돌이켜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얻고, 전(前) 5식을 돌이켜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얻음."
  14. 星雲, "轉識得智". 2013년 4월 5일에 확인
    ""轉識得智:  又作轉識成智。瑜伽行派及唯識宗認為經過特定之修行至佛果時,即可轉有漏之八識為無漏之八識,從而可得四種智慧。即:(一)前五識(眼、耳、鼻、舌、身識)轉至無漏時,得成所作智(又稱作事智),此智為欲利樂諸有情,故能於十方以身、口、意三業為眾生行善。(二)第六識(意識)轉至無漏時,得妙觀察智,此智善觀諸法自相、共相,無礙而轉,能依眾生不同根機自在說法,教化眾生。(三)第七識(末那識)轉至無漏時,得平等性智(又稱平等智),此智觀一切法,自他有情,悉皆平等,大慈悲等,恆共相應,能平等普度一切眾生。(四)第八識(阿賴耶識)轉至無漏時,得大圓鏡智,此智離諸分別,所緣行相微細難知,不妄不愚,一切境相,性相清淨,離諸雜染,如大圓鏡之光明,能遍映萬象,纖毫不遺。〔大莊嚴經論卷三、成唯識論卷十〕(參閱「四智心品」1771) p6626
  1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2권. p. T31n1585_p0007c23 - T31n1585_p0007c24. 제8식의 자상의 여러 분위와 장식(藏識)
    "此識自相分位雖多。藏識過重是故偏說。"
  16.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2권. p. 80 / 583. 제8식의 자상의 여러 분위와 장식(藏識)
    "이 식의 자상은 분위(分位)가 많지만 장식(藏識)이라 이름하는 것은, 첫 번째 지위이면서 과실이 크기 때문에 이에 비중을 두어 이름한 것이다.87)
    87) 뇌야삼위(賴耶三位) 중에서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의 제8식을 장식(藏識), 즉 아뢰야식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말한다. 뇌야삼위는 수행기간[因位]에서 불과(佛果)의 지위[果位]에 이르는 사이에 제8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서, 이외에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가 있다. 아애집장현행위는 제7식이 제8식의 견분을 인식대상[所緣]으로 하여,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실제적 주체[我, ātman]로 착각하여 집착하는 기간이다. 범부로부터 보살은 제7지[遠行地]까지, 2승(乘)은 유학의 성자까지의 제8식을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물론 선악업과위[異熟識]와 상속집지위[阿陀那識]도 병행하지만, 아애집장현행의 뜻이 가장 강하고 그 과실이 크므로 아뢰야식이라고 부른다. 제8지[不動地] 이상의 보살과 2승의 무학위(아라한)에서는 순(純)무루종자가 상속해서 아집을 영원히 일으키지 않으므로, 제8식에 대해서 아뢰야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17.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3c07 - T31n1585_p0013c28. 아뢰야식의 여러 명칭
    "然第八識雖諸有情皆悉成就。而隨義別立種種名。謂或名心。由種種法熏習種子所積集故。或名阿陀那。執持種子及諸色根令不壞故。或名所知依。能與染淨所知諸法為依止故。或名種子識。能遍任持世出世間諸種子故。此等諸名通一切位。或名阿賴耶。攝藏一切雜染品法令不失故。我見愛等執藏以為自內我故。此名唯在異生有學。非無學位不退菩薩有雜染法執藏義故。或名異熟識。能引生死善不善業異熟果故。此名唯在異生二乘諸菩薩位。非如來地猶有異熟無記法故。或名無垢識。最極清淨諸無漏法所依止故此名唯在如來地有。菩薩二乘及異生位持有漏種可受熏習。未得善淨第八識故如契經說。
      如來無垢識  是淨無漏界
      解脫一切障  圓鏡智相應阿賴耶名過失重故最初捨故此中偏說。異熟識體菩薩將得菩提時捨。聲聞獨覺入無餘依涅槃時捨。無垢識體無有捨時。利樂有情無盡時故。心等通故隨義應說"
  18.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p. 141-143 / 583. 아뢰야식의 여러 명칭
    "그런데 제8식은 비록 모든 유정이 다 가지고 있지만, 의미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을 붙인다.87) 먼저 심(心)이라고 이름하니, 갖가지 법으로 인하여 훈습된 종자가 모여진 곳이기 때문이다. 혹은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 이름하니, 종자와 신체[色根]를 유지해서 무너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혹은 소지의(所知依)라고 이름하니, 소지(所知)인 여러 잡염법 ·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혹은 종자식이라고 이름하니, 세간 · 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지니기 때문이다. 이들 여러 명칭은 제8식의 모든 지위에 통한다.88)
    혹은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하니, 모든 잡염품의 법을 거두어 함장해서 소실되지 않게 하기 때문이고, 아견 · 아애 등에 집착되어 자신의 내면적인 자아로 삼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직 중생과 유학위(와 7지 이전의 보살)에만 있다. 무학위와 8지 이상의 불퇴전 보살에게는 잡염법에 집착되는 뜻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이숙식이라고 이름하니, 능히 생사를 이끄는 선 · 불선업의 이숙과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직 범부와 2승(乘)과 여러 보살의 지위에서만 사용된다. 여래지(如來地)에서는 이제 이숙무기의 법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무구식(無垢識)이라고 이름하니, 가장 청정해서 모든 무루법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직 여래지에만 있다. 보살 · 이승 · 범부의 지위에서는 유루종자를 지니고 훈습을 받을 수 있으므로 선(善) · 청정한 제8식을 증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아래처럼 말씀한 바와 같다.
      여래의 무구식은
      청정하고 무루이며 계(界)89)이다.
      모든 장애에서 벗어났으며
      대원경지와 상응한다.90)
    아뢰야라는 명칭91)이 허물이 크기 때문이고, 최초로 버리기 때문에 여기서 그것에 비중을 두어 말한다. 이숙식의 자체를, 보살은 깨달음(해탈도)을 증득할 무렵92)에 버리고, 성문과 독각은 무여의열반에 들어갈 때에 버린다. 무구식의 자체를 버리는 시기는 없다. 유정을 이롭게 하는 행을 다할 때가 없기 때문이다. 심(心) 등(소지의 · 아타나식 · 종자식)은 모든 지위에 통하기 때문에, 버리는 지위를 뜻에 따라 말해야 한다.
    85) 앞에서 말한, 금강심위(金剛心位)에서 번뇌 종자를 끊는다는 견해를 논파하여 말한다.
    86) 앞에서 말한, 제8지 이상의 불퇴전보살이 제8식을 자신의 내면의 자아로 삼는다는 견해를 논파하여 말한다.
    87) 이하 제8식의 여러 가지 명칭을 열거하고, 그 명칭들을 버리는 위차(位次)를 밝힌다[伏斷位次門].
    88) 이상 네 가지 명칭은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범부위[凡位]와 성자위[聖位]에 통하기 때문에 모든 지위[一切位]라고 말한다. 이 네 가지는 뇌야삼위(賴耶三位) 중에서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에서의 명칭이다.
    89) 여기서 계(界, dhātu)는 ‘함장, 원인’의 뜻이다. 온갖 공덕을 저장하고 있으므로 ‘함장’이라 하고, 세간 · 출세간의 사업을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90) 『여래공덕장엄경(如來功德藏嚴經)』이라고 한다.
    91) 다음에 제8식의 여러 가지 명칭을 버리는 위차(位次)를 밝힌다.
    92) 금강유정(金剛喩定)의 무간도(無間道)를 말한다."
  19. 고려대장경연구소, "무몰식 無沒識". 2013년 4월 16일에 확인
    "무몰식 無沒識
    * ⓟ
    * ⓣkun gzhi
    * ⓢālaya
    * ⓔthe unsinkable consciousness
    1]알라야의 번역. 미혹한 세계에 있지만 그 곳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
    ⇒ 아뢰야식(阿賴耶識)."
  20. DDB, "無沒識". 2013년 4월 16일에 확인
    "無沒識:
    Pronunciations: [py] wúmò shì [wg] wu-mo-shih [hg] 무몰식 [mc] mumol sik [mr] mumol sik [kk] ムモツシキ [hb] mumotsu shiki [qn] vô một thức
    Basic Meaning: consciousness with no loss
    Senses:
    # A connotative term for the ālayavijñāna 阿賴耶識 based on the view that it retains all impressions coming from the evolving consciousnesses 轉識 without loss. [Charles Muller]
    # Also interpreted as nondisappearing consciousness, with its being the consciousness that does not disappear upon death, in between rebirths. Also written 無没識. [Charles Muller]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1045
    Bulgyo sajeon 219a
    Japanese-English Buddhist Dictionary (Daitō shuppansha) 200b/224
    Bukkyōgo daijiten (Nakamura) 1348b
    Ding Fubao
    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100c,1520a
    Bukkyō daijiten (Oda) 42-1*1718-2"
  21. DDB, "阿賴耶識". 2013년 4월 16일에 확인
    "阿賴耶識:
    Pronunciations: [py] ālàiyé shì [wg] alai-yeh shih [hg] 아뢰야식 [mc] aroeya sik [mr] araya sik [kk] アラヤシキ [hb] araya shiki [qn] a lại da thức
    Basic Meaning: ālayavijñāna
    Senses:
    # Transliteration of the Sanskrit, meaning store consciousness. (Tib. kun gzhi rnam shes pa). The 'store-house' consciousness, a distinctive concept of the Yogâcāra school 瑜伽行派 of Buddhism, originated in 3-5th century CE India and closely associated with the treatises of the ācāryas Asaṅga 無著 and Vasubandhu 世親.1
    The notion of the store consciousness arose out of early problems surrounding the continuity of both karmic potential and the afflictions (kleśa; nyon mongs; 煩惱) in a latent state (anuśaya; bag la nyal ba; 隨眠) that had been generated by the Abhidharma emphasis upon momentary processes of mind. How, after all, could these two essential components of saṃsāric existence, which are eliminated only toward the end of the path, continuously persist if one's mental stream (saṃtāna; rgyud; 相續) were comprised solely of whatever dharmas (chos; 法) were momentarily present and manifest in mind?2 The ālayavijñāna thus came to denote the mental processes that underlie each and every moment of the traditional six forms of manifest cognitive awareness (pravṛtti-vijñāna; 'jug pa'i rnam par shes pa; 轉識, 六識)—a term coined to distinguish it from the continuous yet subliminal 'ālaya' (阿賴耶) or 'home' awareness. Consonant with traditional definitions of cognitive awareness (vijñāna; rnam par shes pa; 轉識), the ālaya awareness is said to dependently arise based, on the one hand, on both the material sense faculties and the cognitive and affective formations (saṃskāra; 'du byed; 行), which comprise one's sentient existence, as well as, on the other hand, its own specific object, an indistinct (asaṃdvidita; aparicchinna) apprehension of an external world (bhājana-loka; snod kyi 'jig rten; 器世間). Moreover, the ālaya awareness is said to 'grow, develop and increase' —also like traditional forms of vijñāna (S II 65, 67, 101; III 54)—by the seeds of karma (bīja; sa bon; 種子) and the impressions (vāsanā; bag chags; 熏習) of the afflictions which have accumulated 'since beginningless time' through the various experiences of conscious awareness (pravṛtti-vijñāna).
    Although this subliminal ālaya awareness thus enjoys a continuously evolving and reciprocal relationship with active aspects of consciousness, it still reflects—in Indian Buddhist scholasticism at least—its original function as the central locus of accumulated karmic potential and latent afflictions, effectively constituting one's saṃsāric existence and serving as the virtual 'subject' of saṃsāra (also not unlike earlier notions of vijñāna). It is for this reason that ignorant beings typically mistake the ālaya awareness as their self (ātman; bdag; 我), a form of ignorance and self-grasping that was thought to so continuously and subliminally arise that it too came to be considered a distinctive mental process, called 'afflictive mentation' (kliṣṭa-manas; nyon mongs pa can gyi yid; 染汚意) and considered in the Chinese tradition as the seventh consciousness, with the ālayavijñāna as the eighth 第八識.
    Commensurate with these multiple functions, the ālayavijñāna is denoted by a variety of synonyms, most importantly: the root consciousness (mūla-vijñāna; rtsa ba'i rnam par shes pa) 本識), the 'mind with all the seeds' (sarvabījaka-citta; sa bon thams cad pa'i sems; 一切種子識), and the appropriating consciousness (ādāna-vijñāna; len pa'i rnam par shes pa; 阿陀那識).
    Although in its systematic descriptions in early Yogâcāra treatises such as the Yogâcārabhūmi 瑜伽論 and the Mahāyāna-saṃgraha 攝大乘論, the ālaya-vijñāna is largely commensurate with other Indian Buddhist notions of consciousness (vijñāna) (indeed it was specifically couched in Abhidharmic terms), the very metaphors used to describe it—as a repository consciousness that receives and stores the karmic seeds which thereafter serve as the cause (hetu; rgyu; 因緣) of conscious experience—seem to have invited its interpretation as a reified entity, as an unchanging mind which serves as the sole basis, the primordial ground, from which the entire phenomenal world arises. And this in spite of the fact that Indian Yogâcāra doctrine itself explicitly and repeatedly states that taking the ālayavijñāna as a self (ātmadṛṣṭi; bdag tu lta ba; 我見) is one of the main causes of accumulating karma and perpetuating saṃsāric existence!
    This tendency seems to be particularly pronounced in certain later Chinese and Tibetan traditions, but was no doubt exacerbated by the identification—in a different set of texts such as the Laṅkâvatāra-sūtra 楞伽經 and, later and more importantly,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of the ālayavijñāna with the tathāgata-garbha (de bzhin gshegs pa'i snying po 如來藏), the womb or matrix of the Tathāgata. Although this identification was unquestioned in most later forms of Chinese Buddhism (aided, no doubt, by an early translation of the ālayavijñāna as the 'store' consciousness 藏識, the first character of which, 藏, was also the standard translation of garbha), it is not found in the standard treatises of Indian Yogâcāra Buddhism. The sixth-century Indian translator Paramârtha's response to this discrepancy was to preserve the ālayavijñāna as a defiled, eighth consciousness, which must be eliminated upon awakening, while interpolating into his texts an additional, undefiled, ninth consciousness, an amala-vijñāna (阿摩羅識), which persists after the ālayavijñāna is eliminated. One of Xuanzang's 玄奘 aims in retranslating such Yogâcāra texts as the Yogâcārabhūmi and the Mahāyāna-saṃgraha was to recover the earlier, and to his mind more orthodox, sense of the ālayavijñāna as the locus of defiled existence unrelated to the notion of the tathāgata-garbha. Similar developments occurred in Tibetan schools associated with the doctrine of 'extrinsic emptiness' (gzhan stong), who self-consciously departed from Indian Yogâcāra models and posited a primordial ālaya wisdom (kun gzhi ye shes) apart from defiled and discursive forms of vijñāna (rnam shes).
    These varying notions of post-nirvanic forms of consciousness, typically expressed in Mahāyāna traditions as a transformation from vijñāna into jñāna, reflect similar ambiguities found in the earliest collections of Buddhist teachings, in which the consciousness of a Buddha or Arhat, for example, is no longer bound by grasping or appropriation (anupādāna), but is said to be 'nonabiding' or 'unsupported' (appatiṭṭhita-viññāṇa; D III 105; S I 122; S II 66, 103; S III 54; 無住, 無依).
    In sum, this core Yogâcāra concept touches upon some of central-most concerns of Buddhist soteriology and analysis of mind, but its interpretations vary radically depending upon which school, which text, and which time period one is investigating. [W. Waldron]
    # The ālayavijñāna has a variety of connotative synonyms that describe its various aspects, including: 有情根本之心識 the fundamental mind-consciousness of sentient beings; 無沒識 inexhaustible mind, because none of its seeds are lost; 現識 manifesting mind, because all things are revealed in or by it; 種子識 seeds mind, as it is made up of nothing but karmic seeds; 所知依識 the basis of all knowledge; 異熟識 differential maturing consciousness, because it is the locus for the differentiated maturation of karma; 執持識 or 阿陀那 appropriating consciousness, as that which holds together, or is the reification for another rebirth; 第一識 the prime or supreme mind or consciousness; 宅識 abode (of) consciousness. In the interpretations derived from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and so forth, it is known as the 無垢識 unsullied consciousness, i.e. the Tathāgata. 〔成唯識論 T 1585.31.7c15〕 [Charles Muller]
    # The Cheng weishi lun also describes the ālayavijñāna as 'store' as having three connotations 'storer,' 'that which is stored,' and 'that which is appropriated.' See 藏三義. [Charles Muller]
    References
    The Buddha Nature: A Study of Tathāgatagarbha and ālayavijñāna . Delhi: 1991, 1994.
    “ Amalavijñānam und ālayavijñānam .” Festschrift Walther Schübring: Beiträge zur indischen. Philologie und Alterkumskunde. Hamburg: 1951. 148–159.
    “Jung's collective unconsciousness and the ālayavijñāna .” Journal of Indian and Buddhist Studies Tokyo: 35.1. (1986): 46–51.
    “ ālayavijñāna .” Mahābodhi Colombo: 72. (1964): 130–133.
    “Store consciousness (ālayavijñāna)—a ground concept of the Yogâcāra Buddhism.” Bulletin of Tibetology 9.1. (1972): 5–16.
    Ālayavijñāna: On the Origin and the Early Development of a Central Concept of Yogâcāra. Philosophy. Tokyo: International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1977. Studia Philologica Buddhica Monograph Series. IV
    “The ālayavijñāna of the śraddhôtpāda.” Journal of Indian and Buddhist Studies Tokyo: 23.1. (1974): 18–23.
    “How Innovative is the Ālayavijñāna? The Ālayavijñāna in the Context of Canonical and Abhidharma Vijñāna Theory, Part I.”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22. (1994): 199–258.
    ----. The Buddhist Unconscious: The ālaya-vijñāna in the Context of Indian Buddhist Thought. London: RoutledgeCurzon, 2003.
    “The Ālaya-vijñāna in Early Yogâcāra Buddhism—a Comparison of the Meaning in the Saṃdhinirmocana-sūtra and Vijñapti-mātratā-siddhi of Dharmapāla.” Transactions of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Orientalists in Japan. 46–58. Tokyo: Toho Gakkai, 1958. [Charles Muller]
    Notes
    1. The apparent synonym 阿梨耶識 usually has special connotations, so that entry needs to be consulted when that form of Chinese is used.
    2. See the entry 間斷.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14
    Bulgyo sajeon 549a
    Zengaku daijiten (Komazawa U.) 11a
    Iwanami bukkyō jiten 16
    Japanese-English Buddhist Dictionary (Daitō shuppansha) 10b/11
    Japanese-English Zen Buddhist Dictionary (Yokoi) 13
    Zen Dust (Sasaki) 312
    Bukkyōgo daijiten (Nakamura) 10d
    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100b,38a,119c,142b,4208c
    Bukkyō daijiten (Oda) 41-2*23-1-5*689-1-6
    Fo Guang Dictionary 3676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1208
    Sanskrit-Tibetan Index for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Yokoyama and Hirosawa)"
  22. 운허, "無沒識(무몰식)". 2013년 4월 7일에 확인
    "無沒識(무몰식): 아뢰야식의 번역. 진제삼장(眞諦三藏)이 번역한 것. 물(物)ㆍ심(心) 제법의 종자를 모두 이 식 가운데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식이란 뜻."
  23. "Caitika", 20:43, 2 February 2011 · id=411645529 판, 《영어 위키백과》. 2011년 3월 30일에 확인.
    Xuanzang considered the Mahāsāṃghika doctrine of a mūlavijñāna ("root consciousness") to be essentially the same as the Yogācāra doctrine of the ālāyavijñāna ("store consciousness"). He also noted that the doctrine of the mūlavijñāna was contained in the āgamas of the Mahāsāṃghikas
  24. DDB, "藏識". 2013년 4월 16일에 확인
    "藏識:
    Pronunciations: [py] zàngshì [wg] tsang-shih [hg] 장식 [mc] jangsik [mr] changsik [kk] ゾウシキ [hb] zōshiki [qn] tạng thức
    Basic Meaning: to store consciousness
    Senses:
    # The container consciousness; the eighth consciousness, or ālaya-vijñāna as taught by the Yogâcāra school. See 阿賴耶識 (Skt. vijñānâlaya). 〔成唯識論 T 1585.31.7c24〕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JEBD, Hirakawa]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670
    Bulgyo sajeon 762a
    Iwanami bukkyō jiten 512
    A Glossary of Zen Terms (Inagaki) 72
    Japanese-English Buddhist Dictionary (Daitō shuppansha) 339b/376
    Bukkyōgo daijiten (Nakamura) 883d
    Ding Fubao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1029
    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100c,3025b
    Bukkyō daijiten (Oda) 676-1"
  25. 佛門網, "藏識". 2013년 4월 7일에 확인
    "藏識:
    出處: Other
    解釋: 藏識 [py] zàngshì [wg] tsang-shih [ko] 장식 changsik [ja] ゾウシキ zōshiki ||| 'storehouse consciousness' 'container consciousness;' the eighth, or ālaya-vijñāna as taught by the school of Consciousness-only. See 阿頼耶識.
    頁數: [Dictionary References] Naka883d Iwa512 [Credit] cmuller(entry) cwittern(py)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The ālayavijñāna, the storehouse of all knowledge, the eighth of the vijñānas, cf. 阿 and 八.
    出處: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 含藏一切善惡種子的識,即阿賴耶識。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平川彰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Akira Hirakawa
    解釋: ālaya-vijñāna, vijñānālaya.
    頁數: P.3234-P.3241"
  26. "藏", 《네이버 한자 사전》. 2011년 3월 31일에 확인.
  27. DDB, "能藏".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能藏:
    Pronunciations: [py] néngzàng [wg] neng-tsang [hg] 능장 [mc] neungjang [mr] nŭngjang [kk] ノウゾウ [hb] nōzō [qn] năng tạng
    Basic Meaning: storer
    Senses:
    # One connotation of the meaning of 'storage' associated with the ālayavijñāna 阿賴耶識. A reference to the theory that the store consciousness retains all seeds 種子 within itself. This approach sees the store consciousness from the perspective of its causal aspect, given the connotative name 'consciousness that stores all seeds' 一切種子識. One of the three connotations of the store (consciousness) 藏三義. 〔成唯識論 T 1585.31.7c21〕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851
    Bulgyo sajeon 132a
    Bukkyōgo daijiten (Nakamura) 1086d
    Ding Fubao {Digital Version}
    Bukkyō daijiten (Oda) 1383-1"
  28. 고려대장경연구소, "능장 能藏".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능장 能藏:
    * ⓟ
    * ⓣkun gzhi
    * ⓢālaya
    * ⓔthe operation of storage
    1]아뢰야식의 한 가지 의미. 현장이 번역한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 아뢰야식의 특질을 소장(所藏), 능장, 집장(執藏)이라고 구분한 것 중의 하나. 저장하는 아뢰야식의 특질을 일컫는 말. 아뢰야식은 종자(種子)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뜻함."
  29.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所藏".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소장 所藏:
    * ⓟ
    * ⓣgzhi
    * ⓢālaya
    * ⓔstored
    1]아뢰야식의 한 가지 의미. 온갖 현상에 의해 종자가 아뢰야식에 배어 들어 저장된다는 뜻. 현장이 번역한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 아뢰야식의 특질을 소장, 능장(能藏), 집장(執藏)이라고 구분한 것 중의 하나. 잠재하는 아뢰야식의 특질을 일컫는 말."
  30. DDB, "所藏".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所藏:
    Pronunciations: [py] suǒzàng [wg] so-tsang [hg] 소장 [mc] sojang [mr] sojang [kk] ショゾウ [hb] shozō [qn] sở tạng
    Basic Meaning: that which is stored
    Senses:
    # One of the three connotations of the store (consciousness) 藏三義, referring the seeds 種子 which are understood to be stored within, which undergo perfuming 熏習. This view of the store consciousness treats i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results incurred upon it, and is thus related to the connotation of 'matured consciousness' 異熟識. 〔五分律 T 1421.22.180c2, 成唯識論 T 1585.31.7c21〕 [Charles Muller]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531
    Bulgyo sajeon 480a
    Bukkyōgo daijiten (Nakamura) 685b
    Ding Fubao {Digital Version}
    Bukkyō daijiten (Oda) 851-1"
  31. 고려대장경연구소, "집장 執藏".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집장 執藏:
    * ⓟ
    * ⓣgzhi
    * ⓢālaya
    * ⓔgrasping
    1]아뢰야식의 한 가지 의미. 아뢰야식이 제7 말나식에 의해 실재하는 자아라고 오해되어 집착된다는 뜻. 현장이 번역한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 아뢰야식의 특질을 소장(所藏), 능장(能藏), 집장이라고 구분한 것 중의 하나. 집착되는 아뢰야식의 특질을 일컫는 말."
  32. DDB, "執藏".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執藏:
    Pronunciations: [py] zhízàng [wg] chih-tsang [hg] 집장 [mc] jipjang [mr] chipchang [kk] シュウゾウ [hb] shūzō [qn] chấp tạng
    Basic Meaning: appropriated store
    Senses:
    # One of the three connotations of the store (consciousness) 藏三義, referring to the view that the ālayavijñāna 阿賴耶識 is appropriated as a subject 主, or self 我, by the manas consciousness 末那識, providing a sense of continuity. More specifically speaking, this is its aspect of 'that which is appropriated' 所執藏, as distinguished from the 'store appropriator' 能執藏, which would connote the manas. (Skt. ālaya, ā-√lī; Tib. 'chums pa, zhen pa) 〔瑜伽論 T 1579.30.383a6〕 [Charles Muller; source(s): YBh-Ind, Hirakawa]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496
    Bulgyo sajeon 836a
    Bukkyōgo daijiten (Nakamura) 649c
    Ding Fubao {Digital Version}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0297
    Bukkyō daijiten (Oda) 755-1
    Sanskrit-Tibetan Index for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Yokoyama and Hirosawa) {Digital Version}"
  33.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3c07 - T31n1585_p0013c16. 아뢰야식(阿賴耶識) 또는 장식(藏識)
    "然第八識雖諸有情皆悉成就。而隨義別立種種名。... 或名阿賴耶。攝藏一切雜染品法令不失故。我見愛等執藏以為自內我故。此名唯在異生有學。非無學位不退菩薩有雜染法執藏義故。"
  34.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p. 141-142 / 583. 아뢰야식(阿賴耶識) 또는 장식(藏識)
    "그런데 제8식은 비록 모든 유정이 다 가지고 있지만, 의미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을 붙인다.87) ...
    혹은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하니, 모든 잡염품의 법을 거두어 함장해서 소실되지 않게 하기 때문이고, 아견 · 아애 등에 집착되어 자신의 내면적인 자아로 삼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직 중생과 유학위(와 7지 이전의 보살)에만 있다. 무학위와 8지 이상의 불퇴전 보살에게는 잡염법에 집착되는 뜻이 없기 때문이다.
    87) 이하 제8식의 여러 가지 명칭을 열거하고, 그 명칭들을 버리는 위차(位次)를 밝힌다[伏斷位次門]."
  3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3c07 - T31n1585_p0013c13. 아타나식(阿陀那識)
    "然第八識雖諸有情皆悉成就。而隨義別立種種名。謂或名心。由種種法熏習種子所積集故。或名阿陀那。執持種子及諸色根令不壞故。或名所知依。能與染淨所知諸法為依止故。或名種子識。能遍任持世出世間諸種子故。此等諸名通一切位。"
  36.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 141 / 583. 아타나식(阿陀那識)
    "그런데 제8식은 비록 모든 유정이 다 가지고 있지만, 의미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을 붙인다.87) 먼저 심(心)이라고 이름하니, 갖가지 법으로 인하여 훈습된 종자가 모여진 곳이기 때문이다. 혹은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 이름하니, 종자와 신체[色根]를 유지해서 무너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혹은 소지의(所知依)라고 이름하니, 소지(所知)인 여러 잡염법 ·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혹은 종자식이라고 이름하니, 세간 · 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지니기 때문이다. 이들 여러 명칭은 제8식의 모든 지위에 통한다.88)
    87) 이하 제8식의 여러 가지 명칭을 열거하고, 그 명칭들을 버리는 위차(位次)를 밝힌다[伏斷位次門].
    88) 이상 네 가지 명칭은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범부위[凡位]와 성자위[聖位]에 통하기 때문에 모든 지위[一切位]라고 말한다. 이 네 가지는 뇌야삼위(賴耶三位) 중에서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에서의 명칭이다."
  37. 정준기 1993, 57–59쪽.
  38. 星雲, "賴耶三位". 2013년 4월 6일에 확인
    "賴耶三位:  由「因位」到「果位」,將第八阿賴耶識之變化分為三段以說明之,稱為賴耶三位。此係唯識宗之說。即:(一)我愛執藏現行位,為七地以前之菩薩、二乘之有學位,與一切凡夫等,自無始以來的第八識之位;於此位時,第八識係由第七末那識執有實我實法而成。(二)善惡業果位,乃第八阿賴耶識善惡業之果報相繼生起之位;此為八地以上至十地之菩薩、二乘之有餘依位,乃至全部我愛執藏現行位的第八識之位。於此位中,第八識稱為毘播迦(梵 vipāka),亦即異熟識。(三)相續執持位,即相續執持種子之位;於此位中,第八識稱為阿陀那(梵 ādāna),亦即執持識。謂自無始以來至佛果之盡未來際,在因位時執持善、惡、無記,與漏、無漏之種子,在果位時執持無漏最善之種子,能生起現行諸法。七地以前之菩薩及凡夫等之第八識兼具此三位,八地以上菩薩之第八識具有後二位,達於佛果後,其第八識僅具最後一位。通常將第八識稱為阿賴耶識時,主要係凸顯我愛執藏之過失及眾生第八識之自相。〔成唯識論述記卷二末〕(參閱「阿賴耶識」3676) p6313"
  3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2권. p. 80 / 583. 뇌야삼위(賴耶三位)
    "이 식의 자상은 분위(分位)가 많지만 장식(藏識)이라 이름하는 것은, 첫 번째 지위이면서 과실이 크기 때문에 이에 비중을 두어 이름한 것이다.87)
    87) 뇌야삼위(賴耶三位) 중에서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의 제8식을 장식(藏識), 즉 아뢰야식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말한다. 뇌야삼위는 수행기간[因位]에서 불과(佛果)의 지위[果位]에 이르는 사이에 제8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서, 이외에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가 있다. 아애집장현행위는 제7식이 제8식의 견분을 인식대상[所緣]으로 하여,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실제적 주체[我, ātman]로 착각하여 집착하는 기간이다. 범부로부터 보살은 제7지[遠行地]까지, 2승(乘)은 유학의 성자까지의 제8식을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물론 선악업과위[異熟識]와 상속집지위[阿陀那識]도 병행하지만, 아애집장현행의 뜻이 가장 강하고 그 과실이 크므로 아뢰야식이라고 부른다. 제8지[不動地] 이상의 보살과 2승의 무학위(아라한)에서는 순(純)무루종자가 상속해서 아집을 영원히 일으키지 않으므로, 제8식에 대해서 아뢰야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40. 권오민 2003, 260쪽
    "일래과의 성자가 더욱 증진하여 욕계 수소단의 번뇌 중 제9 하하품이 끊어져 더 이상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는 이를 불환과(또는 阿那含, anagamin)의 성자라고 한다. 또한 이미 견도에서 유신견·계금취·의疑를 끊었고, 지금 이 단계에 이르러 욕탐과 진애가 모두 끊어졌기 때문에 욕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5순하분결이 끊어진 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제7 하상품과 제8 하중품의 번뇌를 끊은 이를 불환향이라고 하는데, 이제 여기서는 반열반과 일생의 간격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간一間'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불환의 성자는 현생을 마친후 바로 반열반에 들거나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나 반열반에 드는 등 열반에 드는 처소와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분류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유부 아비달마의 독자적인 구상이 아니라 경설에 따른 그들의 정리 해석으로, 이론체계도 매우 복잡하고 이설도 많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41.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숙식 異熟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이숙식 異熟識:
    * ⓟ
    * ⓣrnam par smin pa’i rnam par shes pa
    * ⓢvipāka-vijñāna
    * ⓔthe consciousness differing in maturation
    1]아뢰야식의 별명. 3능변(能變) 중 제1능변의 다른 이름.
    [동]과보식(果報識), 이숙심(異熟心), 종자식(種子識).
    → 능변(能變)."
  42. 운허, "異熟識(이숙식)". 2013년 4월 10일에 확인
    "異熟識(이숙식): 【범】 vipāka-vijñāna 〓아뢰야식."
  43. 星雲, "異熟識". 2013년 4월 10일에 확인
    "異熟識:  梵語 vipāka-vijñāna。音譯毘播迦毘若南。為阿賴耶識之異稱。乃因果業報之主體。唯識家以阿賴耶識係由善惡業所薰習,以業種子為增上緣而招感異熟果,故稱異熟識,為阿賴耶識之果相。前六識雖亦為異熟果,然僅為別報而有間斷,故非「真異熟」;相對於前六識者,有情總報之果體(即第八識)方是真異熟,以其具有業果義、不間斷義、三界義等三義,故稱異熟識。然至究竟佛果之前剎那方捨其名,即異熟識之名僅存於善惡業之果位;至成佛果時,無論異熟之因或果全不存在,屆時即無此名。又識之三能變中之初能變,即以「異熟能變」稱之。〔攝大乘論本卷上、成唯識論卷二、卷三、卷五、卷八、成唯識論述記卷二末、卷八本〕(參閱「三能變」602、「阿賴耶識」3676) p5160"
  44. 운허, "毘播迦(비파가)". 2013년 4월 10일에 확인
    "毘播迦(비파가): 【범】 Vipāka 이숙(異熟)이라 번역. 선악의 업인(業因)에 의지하여,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무기성(無記性)인 결과를 얻는 것. 유식(唯識)에서는 이것을 제8식의 다른 이름이라 한다. 제8식은 무기성이어서, 업인인 선성(善性)이나 악성(惡性)과 다르게 성숙(成熟)되는 것이란 뜻."
  45. 곽철환 2003, "이숙식(異熟識)". 2013년 4월 10일에 확인
    "이숙식(異熟識):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별명. 아뢰야식은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일어나므로 이와 같이 말함.
    동의어: 이숙보식(異熟報識)"
  46.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3c07 - T31n1585_p0013c19. 이숙식(異熟識)
    "然第八識雖諸有情皆悉成就。而隨義別立種種名。... 或名異熟識。能引生死善不善業異熟果故。此名唯在異生二乘諸菩薩位。非如來地猶有異熟無記法故。"
  47.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p. 141-142 / 583. 이숙식(異熟識)
    "그런데 제8식은 비록 모든 유정이 다 가지고 있지만, 의미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을 붙인다.87) ...
    또는 이숙식이라고 이름하니, 능히 생사를 이끄는 선 · 불선업의 이숙과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직 범부와 2승(乘)과 여러 보살의 지위에서만 사용된다. 여래지(如來地)에서는 이제 이숙무기의 법이 없기 때문이다."
  48. 운허, "善惡業果位(선악업과위)". 2013년 4월 6일에 확인
    "善惡業果位(선악업과위): 아뢰야식(阿賴耶識) 3위(位)의 1. 선ㆍ악의 업에 의하여 받은 지위. 비롯이 없는 범부로부터 10지(地)의 맨 나중인 금강심보살까지, 2승이면 무학과(無學果)의 성자(聖者)까지의 제8식을 말함. 이 지위에서는 제8식을 비파가식(毘播迦識)이라 함."
  4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97, 제1권. p. T31n1597_p0321a22 - T31n1597_p0321a23. 공용(功用)과 3해탈문(三解脫門)
      能無功用於十方  隨諸有情意所樂
      開示殊勝極廣大  三種解脫等方便
  5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594, T.1597, 제1권. p. 2 / 297. 공용(功用)과 3해탈문(三解脫門)
      의식적인 노력[功用] 없이도7) 능히 시방세계에서8)
      모든 유정들의 마음에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뛰어나고 지극히 광대한
      세 가지 해탈문9) 등의 방편문을 열어 보이시네.
    7) 공용(功用)은 신체ㆍ입ㆍ뜻으로 짓는 동작ㆍ행위를 말한다. 보살은 공관(空觀)을 닦음에 있어서 7지(地)까지는 인위적인 행위가 가해지며[有功用地], 제8지부터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관이 이루어진다[無功用地]. 부처님께서는 전식득지(轉識得智)를 이루셨기 때문에,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중생교화 사업을 할 수 있다.
    8) 이하 두 게송은 붓다의 대지(大智)ㆍ대자(大慈)의 두 가지 덕을 서술한다.
    9) 해탈에 들어가는 문이 되는 세 가지 선정이다. 공해탈문(空解脫門)은 사람과 법의 본성이 공한 것을 관조하는 것이다.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은 차별상을 떠나는 것이다.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은 원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51. 星雲, "功用地". 2013년 1월 20일에 확인
    "功用地: 指初地至七地之菩薩階位。於菩薩各種修行階段中,初地以上,至第七地之菩薩,雖已證得真如,猶須加行用功,故稱功用地;而八地以上之菩薩,無須再藉加功用行,自然功德增進,則稱無功用地。成唯識論卷九(大三一‧五三中):「八地以上,純無漏道,任運起故,三界煩惱,永不現行。」"
  52. 운허, "無功用智(무공용지)". 2013년 1월 20일에 확인
    "無功用智(무공용지): 보살의 계위 중에서 8지(地) 이상의 보살은 애쓰지 않더라도 자기의 지혜가 저절로 진리에 계합한다. 이 지혜를 무공용지라 한다."
  53. 고려대장경연구소, "아다나식 阿陀那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아다나식 阿陀那識:
    * ⓟ
    * ⓣlen pa’i rnam par shes pa
    * ⓢādāna-vijñāna
    * ⓔthe maintaining consciousness
    1]집지(執持), 무해(無解)라고 번역. 심식의 일종. 제7식 또는 제8식의 별명. 구역에서는 제7식, 신역에서는 제8식이라고 한다. 선악의 업력과 유정(有情)의 신체가 흩어지지 않도록 유지시켜 주는 심식이다.
    [동]상속식(相續識)."
  54. DDB, "執持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執持識:
    Pronunciations: [py] zhíchí shì [wg] chih-ch'ih-shih [hg] 집지식 [mc] jipji sik [mr] chipchi sik [kk] シュウジシキ [hb] shūji shiki [qn] chấp trì thức
    Basic Meaning: maintaining consciousness
    Senses:
    # See 阿陀那識 (Skt. ādāna-vijñāna). 〔攝大乘論 T 1593.31.114a12〕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496
    Bulgyo sajeon 836a
    Japanese-English Buddhist Dictionary (Daitō shuppansha) 291a/322, 301b/335
    Bukkyōgo daijiten (Nakamura) 649a
    Ding Fubao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0296
    Bukkyō daijiten (Oda) 42-1*755-3"
  55. DDB, "阿陀那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阿陀那識:
    Pronunciations: [py] ātuónà shì [wg] o-t'o-na-shih [hg] 아타나식 [mc] atana sik [mr] at'ana sik [kk] アダナシキ [hb] adana shiki [qn] a đà na thức
    Basic Meaning: ādāna-vijñāna
    Senses:
    # Transliteration of the Sanskrit, meaning appropriating consciousness, or clinging consciousness. In Yogâcāra, basically synonymous with ālaya-vijñāna 阿賴耶識 (store consciousness), expressing the special connotation of 'that which holds the body and the sense organs together.' It is also understood to be the consciousness that contains all seeds, and which is responsible for the linking of rebirths. Translated into Chinese as 執持識. 〔顯揚論, T 1602.31.480c〕 Also written as 阿陁那識. Abbreviated as 陀那識 and 阿陀那. 〔 成唯識論 T 1585.31.14c5〕 [Charles Muller, Dan Lusthaus]
    # In the Dilun 地論宗 and Shelun 攝論宗 schools, ādāna-vijñāna is understood in a quite different way, as there it refers to the seventh consciousness, or the obstructed indeterminate (or 'neutral' ) aspect of the eighth consciousness. In schools that understood the eighth consciousness to be completely undefiled, this had to be interpreted as the seventh consciousness equivalent to the manas 末那識. [Charles Muller, Dan Lusthaus]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6
    Bulgyo sajeon 557a
    Japanese-English Buddhist Dictionary (Daitō shuppansha) 3b/3
    Zen Dust (Sasaki) 312
    Fo Guang Dictionary 3640
    Ding Fubao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1204
    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38a,1520b,4209a,4745b
    Sanskrit-Tibetan Index for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Yokoyama and Hirosawa)"
  56. 佛門網, "阿陀那". 2013년 4월 7일에 확인
    "阿陀那: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ādāna, intp. by 執持 holding on to, maintaining; holding together the karma, good or evil, maintaining the sentient organism, or the germ in the seed or plant. It is another name for the ālaya-vijñāna, and is known as the 阿陀那識 ādānavijñāna."
  57. 운허, "阿陀那識(아타나식)". 2013년 4월 7일에 확인
    "阿陀那識(아타나식): 【범】 adāna 제8식 혹은 제7식의 별명. 『지론(地論)』ㆍ『섭론(攝論)』 천태 등의 구역가(舊譯家)들은 제7식이라 하고, 유식가(唯識家)들은 제8식의 별명이라 함."
  58. 星雲, "阿陀那識". 2013년 4월 7일에 확인
    "阿陀那識:  又作陀那識。阿陀那,梵語 ādāna,新譯家將之意譯作執、執持、執我,並以之為第八識之別名;舊譯家譯作無解,而以之為第七識之別名。(一)為第八識之別名。因阿陀那識為執持感官、身體,令不壞之根本識;且執持諸法之種子,令不失;復因其執持自身,令結生相續,故稱執持識。玄奘、窺基等法相宗新譯家,認為阿陀那識執持善惡業之勢力及有情之身體,令之不壞,故以其為第八阿賴耶識之別名。(二)為第七末那識之別名。因阿陀那識執持種子及有情之身體;而末那識恆與我癡、我見、我慢、我愛等四煩惱相應,並恆審第八阿賴耶識之見分為「我、我所」而執著;二者所代表之意義實係相同,故地論宗、攝論宗、天台宗之舊譯家以阿陀那識係執持阿賴耶識為自我之第七末那識之別名。又有將此識譯作無明識、業識、轉識、現識、智識、相續識、妄識、執識、煩惱識、染污識等。〔解深密經卷一心意識相品、攝大乘論本卷上、成唯識論卷三、大乘義章卷三、法華玄義卷五〕 p3640"
  5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3c07.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
    "然第八識雖諸有情皆悉成就。而隨義別立種種名。謂或名心。由種種法熏習種子所積集故。或名阿陀那。執持種子及諸色根令不壞故。或名所知依。能與染淨所知諸法為依止故。或名種子識。能遍任持世出世間諸種子故。此等諸名通一切位。... 或名無垢識。最極清淨諸無漏法所依止故此名唯在如來地有。菩薩二乘及異生位持有漏種可受熏習。未得善淨第八識故如契經說。
      如來無垢識  是淨無漏界
      解脫一切障  圓鏡智相應"
  60.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3권. pp. 141-142 / 583.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
    "그런데 제8식은 비록 모든 유정이 다 가지고 있지만, 의미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을 붙인다.87) 먼저 심(心)이라고 이름하니, 갖가지 법으로 인하여 훈습된 종자가 모여진 곳이기 때문이다. 혹은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 이름하니, 종자와 신체[色根]를 유지해서 무너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혹은 소지의(所知依)라고 이름하니, 소지(所知)인 여러 잡염법 ·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혹은 종자식이라고 이름하니, 세간 · 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지니기 때문이다. 이들 여러 명칭은 제8식의 모든 지위에 통한다.88) ...
    혹은 무구식(無垢識)이라고 이름하니, 가장 청정해서 모든 무루법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직 여래지에만 있다. 보살 · 이승 · 범부의 지위에서는 유루종자를 지니고 훈습을 받을 수 있으므로 선(善) · 청정한 제8식을 증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아래처럼 말씀한 바와 같다.
      여래의 무구식은
      청정하고 무루이며 계(界)89)이다.
      모든 장애에서 벗어났으며
      대원경지와 상응한다.90)
    87) 이하 제8식의 여러 가지 명칭을 열거하고, 그 명칭들을 버리는 위차(位次)를 밝힌다[伏斷位次門].
    88) 이상 네 가지 명칭은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범부위[凡位]와 성자위[聖位]에 통하기 때문에 모든 지위[一切位]라고 말한다. 이 네 가지는 뇌야삼위(賴耶三位) 중에서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에서의 명칭이다.
    89) 여기서 계(界, dhātu)는 ‘함장, 원인’의 뜻이다. 온갖 공덕을 저장하고 있으므로 ‘함장’이라 하고, 세간 · 출세간의 사업을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90) 『여래공덕장엄경(如來功德藏嚴經)』이라고 한다."
  61. 운허, "執持識(집지식)". 2013년 4월 7일에 확인
    "執持識(집지식): 아뢰야식의 3위 가운데 제3위, 제8식을 말함. 이것을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라 함은 범부로부터 부처까지를 말함. 물심(物心) 제법의 종자와 근(根)을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집수임지(執受任持)한다는 뜻."
  62. 佛門網, "阿陀那識". 2013년 4월 7일에 확인
    "阿陀那識:
    出處: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 阿賴耶識的別名,義為執持,言此識之力,能執取維持善惡業因,及有情身體,使不破壞。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阿陀那識===瑜伽七十六卷一頁云:此識、亦名阿陀那識。何以故?由此識、於身隨逐執持故。
    二解 攝論一卷三頁云:復次此識、亦名阿陀那識。此中阿笈摩者,如解深密經說:阿陀那識甚深細,一切種子如瀑流。我於凡愚不開演。恐彼分別執為我。何緣此識亦復說名阿陀那識?執受一切有色根故。一切自體取所依故。所以者何?有色諸根,由此執受,無有失壞,盡壽隨轉。又於相續正結生時,取彼生故;執受自體。是故此識亦復說名阿陀那識。
    三解 成唯識論三卷九頁云:此第八識、或名阿陀那。執持種子及諸色根、令不壞故。
    四解 成唯識論三卷十二頁云:以能執持諸法種子,及能執受色根依處,亦能執取結生相續;故說此識名阿陀那。
    五解 成唯識論七卷十八頁云:阿陀那識、三界九地、皆容互作等無間緣。下上死生、相開等故。有漏無間,有無漏生;無漏、定無生有漏者。鏡智起已;必無斷故。善與無記,相望亦然。此何界後引生無漏?或從色界,或欲界後。謂諸異生求佛果者,定色界後引生無漏。彼必生在淨居天上大自在宮得菩提故。二乘迴趣大菩提者,定欲界後引生無漏。迴趣留身,唯欲界故。彼雖必往大自在宮方得成佛;而本願力所留生身,是欲界故。有義、色界亦有聲聞迴趣大乘願留身者。既與教理、俱不相違;是故聲聞第八無漏、色界心後、亦得現前。然五淨居無迴趣者。經不說彼發大心故。"
  63. 고려대장경연구소, "상속식 相續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상속식 相續識:
    * ⓟ
    * ⓣ
    * ⓢādāna-vijñāna
    * ⓔthe continuing consciousness
    1]아다나식의 별명. 계속 이어지며 끊이지 않는 심식이라는 뜻.
    ⇒ 아다나식(阿陀那識).
    아타나식(阿陀那識)."
  64. DDB, "相續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相續識:
    Pronunciations: [py] xiāngxù shì [wg] hsiang-hsü-shih [hg] 상속식 [mc] sangsok sik [mr] sangsok sik [kk] ソウゾクシキ [hb] sōzoku shiki
    Basic Meaning: continuing consciousness
    Senses:
    # In the system of 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the mental consciousness (mano-vijñāna 意識) that continues unbroken without cessation. For example, once a deluded thought arises, it continues without limit, thus carrying karma along with it. The fifth of the five kinds of consciousness taught in the Awakening of Faith 〔起信論 T 1666.32.577b13〕 .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Soothill, Hirakawa]
    # In the Yogâcāra system, equivalent to the ādāna-vijñāna 阿陀那識, depending on the context, applicable to either the manas or ālayavijñāna, which continue without lapse at the subliminal level. One of the ten names of the seventh consciousness 七識十名. [Charles Muller]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658
    Bulgyo sajeon 432a
    Bukkyōgo daijiten (Nakamura) 868c
    Fo Guang Dictionary 3916
    Ding Fubao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0875
    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1014c
    Bukkyō daijiten (Oda) 595-1*688-2-29"
  6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97, 제1권. p. T31n1597_p0325a16 - T31n1597_p0325b04. 상속식(相續識)
    "論曰。何緣此識亦復說名阿陀那識。執受一切有色根故。一切自體取所依故。所以者何。有色諸根由此執受。無有失壞盡壽隨轉。又於相續正結生時。取彼生故。執受自體。是故此識亦復說名阿陀那識。釋曰。執受一切有色諸根故者。所以者何。有色諸根由此執受。盡壽隨轉用此為釋。謂由眼等有色諸根阿賴耶識所攝受故。非如死身青瘀等位。若至死時此捨離故。彼即便有青瘀等位。是故定知此執受故乃至壽限彼不失壞。一切自體取所依故者。又於相續正結生時取彼生故。執受自體。用此為釋。謂由此識是相續識故。於相續正結生時能攝受生一期自體。亦為此識之所攝受。由阿賴耶識中一期自體熏習住故。彼體起故說名彼生。受彼生故名取彼生。由能取故執受自體。以是義故阿賴耶識。亦復說名阿陀那識。"
  6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594, T.1597, 제1권. pp. 28-29 / 297. 상속식(相續識)
    "[論] 무슨 까닭에 이 식을 또한 아타나식116)이라 이름하는가? 모든 감각기관[有色根]을 집수(執受)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자체가 취하는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모든 감각기관은 이 집수로 인해서 파괴되지 않고, 수명을 다할 때까지 따라서 전전하는가?
    또한 상속해서 바로 생을 맺을 때에 그 생을 취하기 때문에 자체를 집수한다. 그러므로 이 식을 또한 아타나식이라 이름한다.
    [釋] ‘모든 감각기관을 집수하기 때문’은 ‘무슨 까닭에 모든 감각기관은 이 집수로 인해서 수명을 다할 때까지 따라서 전전하는가’에 대한 해석이 된다 한다. 이른바 안근 등 여러 감각기관은 아뢰야식의 섭수하는 바이기 때문에 시체의 푸르딩딩한 모습[靑瘀] 등117)과 다르다. 만일 죽음에 이르는 때에 이것118)을 여의기 때문에 그것119)에 곧 시체의 푸르딩딩한 모습 등의 단계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지니, 이 집수 때문에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것이 파괴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의 자체가 취하는 의지처이기 때문’은 ‘또한 상속해서 바르게 생을 받을 때 그 생을 취하기 때문에 자체를 집수한다’에 대한 해석이 된다. 이른바 이 식은 상속식이기 때문에, 상속해서 바로 생을 맺을 때 능히 생의 한평생의 자체를 섭수함도 역시 이 식이 섭수하는 것이다. 아뢰야식 중에서 한평생의 자체는 훈습하여 머물기 때문이다. 그것의 자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 생’이라고 말한다. 그 생을 수용하기 때문에 ‘그 생을 취한다’고 말한다. 능히 취함으로 인해서 자체를 집수한다. 이런 의미 때문에 아뢰야식을 또한 아타나식이라 이름한다.
    116) 아타나(阿陀那)는 범어 ādāna의 음역으로서, 유지ㆍ보존의 뜻이다. 제8식이 신체와 종자를 유지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117) 시체의 부정한 양상들을 가리킨다. 이에 시체가 부어서 마치 곡식 담긴 자루처럼 팅팅한 모습[脹相], 시체의 가죽과 살이 문드러지고 오장이 썩는 모습[壞相], 시체의 온몸이 피고름으로 더러워진 모습[血塗相], 시체에서 고름과 벌레가 흘러나오고 살이 흩어져서 여러 군데에 낭자한 모습[濃爛相], 시체가 바람에 쏘이고 비에 씻겨서 피고름이 엉겨 푸르퉁퉁한 모습[靑瘀相], 시체가 새ㆍ짐승ㆍ구더기에 파먹히는 모습[霙相], 가죽과 살이 없어지고 뼈만 붙어 있으면서 머리와 다리가 뒤섞인 모습[散相], 백골이 낭자한 모습[骨相], 불에 타서 그슬리어 악취가 나고 재가 되는 모습[燒相]이 있다. 5욕락을 즐기는 미혹을 없애기 위한 관법인 부정관(不淨觀) 가운데 9상관(想觀)은 이들 시체의 부정한 모습들을 관찰한다.
    118) 아뢰야식을 가리킨다.
    119) 감각기관을 말한다."
  67. 고려대장경연구소, "상속식 相續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상속식 相續識:
    * ⓟ
    * ⓣ
    * ⓢ
    * ⓔconsciousness of continuity
    1]5식(識), 5의(意)의 하나. 계속 이어져서 단절되지 않는 식(識). 인식 대상에 대하여 헛된 집착을 계속 일으키는 식을 말함. 이 식으로 인하여 과거세의 선악의 과보가 후세에 이어지게 됨."
  68. 星雲, "相續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相續識:  為大乘起信論所說五意之一。謂智識執著外界之境,由妄念分別而於愛境起樂覺,於不愛之境起苦覺;所起苦樂之境相續不絕,且依之起惑潤業,使生死相續不斷。又據大乘起信論謂,以念相續不斷之故,住持過去無量世之善惡業,令不忘失,復能成熟現在、未來之苦樂等報,無所差違,能令現在、已經之事忽然而念,未來之事亦不覺妄慮。〔釋摩訶衍論卷四、起信論義疏卷上末、大乘起信論之研究〕(參閱「五意」1165) p3916"
  69. 운허, "相續識(상속식)".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相續識(상속식): 『기신론』 5식(識)의 하나. 객관 대상에 대하여 망(妄)으로 염(染)이라 정(淨)이라 하는 집착이 언제까지나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식(識). 그 모양은 과거 한정없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선악의 업력을 머물게 하여 잃지 아니하며, 또 그 업력에 대하여 현재ㆍ미래의 고락의 과체(果體)를 성숙(成熟)케 하여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니, 현재의 사실이나 과거에 생겼던 일들을 홀연히 생각해 내어 이에 집착하며, 또 미래의 일에 상상을 더하여 근심하고 기뻐하는 것은 모두 이 식(識)이 거칠게 분별하는 모양에 지나지 않음."
  70. 운허, "五意(오의)".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五意(오의):
    [1] 『기신론(起信論)』에 있는 말. 뜻이 생기고 발전하는 계급에 따라 5종의 이름을 든 것. 곧 업식(業識)ㆍ전식(轉識)ㆍ현식(現識)ㆍ지식(智識)ㆍ상속식(相續識).
    [2] 『법화경(法華經)』에 있는 말. 인의(人意)ㆍ천의(天意)ㆍ혜의(慧意)ㆍ보살의(菩薩意)ㆍ불의(佛意)."
  71. 星雲, "慧遠".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慧遠:  (二)(523~592)隋代僧。敦煌(甘肅)人,俗姓李。又稱隋遠、小遠、大遠、北遠。十三歲隨沙門僧思出家。年十六隨湛律師赴鄴都(河北臨漳),博覽大小乘經典,二十歲從法上受具足戒,從大隱習四分律,後專師事法上,盡學餘部。未久,攜學侶遷回高都(山西晉城)清化寺,四眾合建講堂。後值北周武帝滅齊,敕命廢經毀像,並令沙門還俗,眾皆莫敢抗諫,師獨挺出與帝辯駁,厲聲謂(大五○‧四九○下):「陛下今恃王力自在,破滅三寶,是邪見人。阿鼻地獄不揀貴賤,陛下何得不怖?」帝怒言:「但令百姓得樂,朕亦不辭地獄諸苦。」帝卒滅佛法。師乃潛隱汲郡西山,諳誦法華、維摩等經,以期遺法之不墜。
     至隋興,師始出,於洛邑大開法門,遠近望風來歸,復為文帝所重,敕任洛州沙門都。歷張講席於澤州、定州、上黨等地,並數度應召歸西京,親臨御席,敷述聖化,帝大悅,遂敕居興善寺,未久又另建淨影寺,專事講學。師因住淨影寺,故又稱「淨影寺慧遠」、「淨影」,以別於廬山慧遠。開皇七年(587),敕為大德。十二年,又敕命主持譯場,刊定詞義。同年入寂,世壽七十。師屬地論宗南道派,晚年又就曇遷稟受攝大乘論,博綜當代諸學,亦精通文理,世稱釋義高祖。著有大乘義章二十六卷、十地經論義記十四卷、華嚴經疏七卷、大般涅槃經義記二十卷、法華經疏七卷、維摩經義記四卷、勝鬘經義記三卷、無量壽經義疏一卷等,凡二十部百餘卷。其中,大乘義章二十六卷,堪稱為佛教之百科全書,對隋、唐佛教之研究影響甚大。〔續高僧傳卷八、新編諸宗教藏總錄〕 p6053"
  72. 星雲, "五意".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五意:   (一)意識之所依即為「意」(末那識)。依大乘起信論之觀點,「意」有業識、轉識、現識、智識、相續識等五種名。即依心而生起意,此心即眾生心,亦即阿賴耶識,為一切物之本體;故依阿賴耶識而說有無明。(一)業識,即由於阿賴耶識之根本無明不覺而生起心動(即妄心現起)。(二)轉識,即依心動而產生能見之相,亦即主觀之作用。(三)現識,即能現起一切之境界,亦即客觀之對象。(四)智識,即有分別境界之能力,認為其對象是心外的實在物。(五)相續識,指不斷的分別作用(念),亦即由認識而有種種概念積留於心識中而相應不斷,由此故產生意識。
     有關阿賴耶識與五意、意識間之關係,慧遠在起信論義疏卷上末說,心是第八識,五意是第七識,意識是第六識。而在法藏之起信論義記卷中末則說,五意之中,業識、轉識、現識是第八識之自體分、見分、相分,後二識是意識,至於第七識則未言及。又元曉之起信論疏記卷三亦認為業、轉、現三識是第八識,智識是第七識,相續識是第六識。〔釋摩訶衍論卷四〕
     (二)法華經稱人意、天意、慧意、菩薩意、佛意等為五意。 p1165"
  73. 고려대장경연구소, "심 心".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심 心:
    * ⓟcitta
    * ⓣsems
    * ⓢcitta
    * ⓔmind
    [동]의(意), 식(識).
    [반]
    1]마음. 모든 존재를 정신과 물질로 구분할 때의 정신. 마음을 주체인 심왕(心王)과 이것에 종속하여 일어나는 작용인 심소(心所)로 구분할 때의 심왕. 8식.
    2]6근의 하나로서 사고 기관. 5온의 하나로서 식별 작용. 유식학에서는 순수하게 대상 자체를 보는 것.
    3]심·의·식(心意識)으로서의 심. 심과 의와 식이라는 세 가지로 구분되는 마음. 소승의 설일체유부에서 이 셋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대승의 유식학에서 심은 아뢰야식, 의는 말나식, 식은 6식을 가리킨다. 아뢰야식은 온갖 현상이 발생할 원인이 집합됨으로써 이로부터 온갖 현상이 일어나게 하는 근본 원리가 되는 마음이다. 의는 사유 작용, 식은 식별 작용을 가리킨다.
    4]심장.
    5]찰나."
  74. 佛門網, "citta". 2013년 4월 17일에 확인
    "citta:
    出處: Buddhist Dictionary,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by NYANATILOKA MAHATHERA
    解釋: citta: 'mind', 'consciousness', 'state of consciousness', is a synonym of mano (q.v.) and viññāṇa (s. khandha and Tab. 1). Dhs. divides all phenomena into consciousness (citta), mental concomitants (cetasika, q.v.) and corporeality (rūpa). In adhicitta, 'higher mentality', it signifies the concentrated, quietened mind, and is one of the 3 trainings (s. sikkhā). The concentration (or intensification) of consciousness is one of the 4 roads to power (s. Iddhipāda ).
    出處: Buddhānusmṛti - A Glossary of Buddhist Terms
    解釋: citta [citta] mind. Mind is the key concept in Buddhist philosophy. It is the sixth sense. It is the receiver of the phenomena. Manas, that is, mind does not have a material form. It is the means of perception, awareness about the objects. ‘All things are creations of mind’. On account of this productive capacity mind is mentioned as ‘land’. The existence of the world is in relation to the awareness of mind. Mind is considered as the basis of the six kinds of consciousness. The six forms of consciousness are identical with mind. Mind is the inducing cause for the awareness of objects through sense-organs and perception. Thus it has capacity to have cognition of an object. The entry, that is, receiving of the objects of consciousness (mano-āyatana) is known as manas. It can reach distant objects. While manas is the rational faculty, citta is the seat of emotion. The Yogācāra School considers the mind as separate from the six kinds of consciousness. It calls the mind as the home of all latent ideas. The Laṅkāvatāra Sūtra says, "Citta exists; not the objects perceptible by sight. Through objects visually cognised, citta manifests itself in body, in one’s objects of enjoyment, residence, etc. It is called the ālaya of men." The mental factors make the mind good or bad. Thus, one has to train one’s mind to keep it away from greed, hatred, delusion, conceit, and other unwholesome factors. It should be filled with loving kindness.
    出處: A.P. Buddhadatta Mahathera, Concise Pali-English and English-Pali Dictionary [available as digital version from Metta Net, Sri Lanka]
    解釋: citta : [nt.] mind; thought; (m.), name of a month: March-April. (adj.), variegated; manifold; beautiful. (nt.), a painting; picture.
    出處: A Dictionary of Buddh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2004 (which is available in electronic version from answer.com)
    解釋: citta (Sanskrit; Pāli). Mind; in early Buddhism and present-day Theravāda, citta is regarded as virtually synonymous with vijñāna (consciousness) and manas (intellect) but in later schools of Buddhism it is distinguished from those two. It is defined as the cognitive ground underlying the dynamic system of psychological operations (caitta). According to many schools, the mind in its natural state is intrinsically luminous (citta-prakṛti-prabhāsvara), free from all attachments and conceptualizing, and thus is empty in nature (śūnya). In this latter sense, some Mahāyāna and tantric authorities understand citta as equivalent to bodhicitta, and hold that when the natural state of mind is obscured by the false split into a perceiving subject and perceived objects, the everyday mind, which is a fragmentation of its natural state, arises."
  75. 운허, "心意識(심의식)". 2012년 10월 3일에 확인
    "心意識(심의식): 심(心)은 범어 질다(質多)의 번역, 집기(集起)의 뜻. 의(意)는 범어 말나(末那)의 번역, 사량(思量)의 뜻. 식(識)은 범어 비야남(毘若南)의 번역, 요별(了別)의 뜻. 구사종에서는 심왕(心王)에 6식(識)을 세우고 심왕의 작용에 대하여 그 이름을 달리 함. (1) 심(心). 온갖 심리 작용을 집합하여 인기(引起)하므로 집기의 뜻이 있음. (2) 의(意). 여러 가지 대경을 헤아리고 생각하므로 사량의 뜻이 있음. (3) 식(識). 대경을 요별(了別)하는 뜻이 있으므로 식이라 함. 이 세 가지는 모두 6식의 다른 이름이라 함. 유식종에서는 8식을 통틀어 심ㆍ의ㆍ식의 세 뜻이 있다 함. 제8식은 온갖 종자를 모았고, 또 종자로 하여금 활동케 하므로 심(心)이라 하고, 제7식은 대경을 항상 살펴 사량하는 뜻이 수승하므로 사량이라 하고, 전(前) 6식은 자기 앞의 대경을 잘 식별(識別)하는 작용이 수승하므로 식이라 이름한다 함. ⇒식(識)ㆍ심식(心識)"
  76. 星雲, "心意識". 2012년 10월 3일에 확인
    "心意識:  指心、意、識三者。心為梵語 citta 之意譯,音譯作質多,即集起之義。意為梵語 manas 之意譯,音譯作末那,即思量之義。識為梵語 vijñāna 之意譯,音譯作毘若南,即了別之義。大略言之,心是主體意與識是心作用之兩面。有關此詞之語意,大小乘論典有種種不同之說法。
     據俱舍宗,心、意、識三者為六識之異名,其體實為同一。即心(心王)能集起各種精神作用或業,故稱為心;心能思惟量度,故稱為意;心能了知識別,故稱為識。或謂心有種種差別(從梵語 citta 所導出之種種義)之義、意有起識所依止(所依止)之義、識有依託於意而起(能依止)之義。
     據大乘之解釋,心、意、識三者各別。唯識宗主張第八阿賴耶識能積集種子,故稱為心;第七末那識能思量起我執,故稱為意;前六識能認識對象,故稱為識。據大乘起信論載,阿賴耶識為心,五意為意,六識為識;其所異於唯識等說者,以意有五種別名,其餘說法均同。此外,佛性論卷三分別以六識心配於心,阿陀那識配於意,阿賴耶識配於識,亦異前述諸說。〔入楞伽經卷七、解深密經卷二、大毘婆沙論卷七十二、俱舍論卷四、瑜伽師地論卷六十二、成唯識論卷五、成實論卷五〕 p1407"
  7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c15 - T29n1558_p0021c24. 심(心)·의(意)·식(識)
    "別之相。如是已說諸心心所品類不同俱生異相。然心心所於契經中隨義建立種種名想。今當辯此名義差別。頌曰。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
    論曰。集起故名心。思量故名意。了別故名識。復有釋言。淨不淨界種種差別故名為心。即此為他作所依止故名為意。作能依止故名為識。故心意識三名所詮。義雖有異而體是一。"
  7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8-189 / 1397. 심(心)·의(意)·식(識)
    "이와 같이 온갖 심과 심소의 품류의 동일하지 않음과 동시생기[俱生]의 관계와 그 이상(異相)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그런데 심과 심소에 대해 계경 중에서는 그 뜻에 따라 여러 가지의 명칭과 개념[名想]을 설정하고 있다. 이제 여기서 마땅히 이러한 명칭의 뜻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의(意)·식(識)은 그 본질이 동일하며
      심과 심소는 유소의(有所依)로도
      유소연(有所緣)으로도, 유행상(有行相)으로도,
      상응(相應)으로도 일컬어지니, 뜻에 다섯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
    논하여 말하겠다. 집기(集起)하기 때문에 '심(心)'이라 이름한 것이고, 사량(思量)하기 때문에 '의(意)'라고 이름한 것이며, 요별(了別)하기 때문에 '식(識)'이라고 이름한 것이다.89) 다시 어떤 이는 해석하여 말하기를, "정(淨)과 부정(不淨)의 계(界)에 여러 가지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심'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며,90) 이러한 '심'은 다른 것의 소의지(所依止)가 되기 때문에 '의'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며, 능의지(能依止)가 되기 때문에 '식'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91) 그렇기 때문에 심·의·식의 세 가지 명칭은 비록 그것이 드러내는 뜻은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동일하다"고 하였다.
    89) 심(心, citta)의 어원 cit는 생각하다, 이해하다의 뜻이지만, 그것은 다시 ci(쌓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집기'라고 번역한 것이다. 곧 마음은 신(身)·구(口)·의(意) 3업을 집기한다. 의(意, manas)는 어근 man(생각하다)에 근거하여 '사량'으로 번역한 것이고, 식(識, vijñāna)는 vi-√jñā (다르게 알다)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요별'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90) 여기서 정(淨)·부정(不淨)이란 선·불선을 말한다. 즉 마음에는 닦고 닦지 않음에 의해 선·불선·무기 등 여러 단계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citta로 이름한 것으로, 이는 citra(種種)에 근거한 경부(經部) 혹은 유가사(瑜伽師)의 해석이다.
    91) 소의지가 된다고 함은 현행식의 근거가 되는 전찰나의 의근(意根)을 말하며, 능의지가 된다고 함은의 근에 근거하는 현행의 의식(意識)을 말한다. 즉 본론 권제1에서 의근을 분별하면서 과거로 낙사한 무간멸(無間滅)의 의(意)가 다음 찰나 의식의 소의지가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이를 근거로 해석한 것이다."
  79. 원휘(圓暉) & T.1823, 제4권. p. T41n1823_p0843c01 - T41n1823_p0843c12. 심(心)·의(意)·식(識)
    "從此第四。明眾名別者。論云。然心心所。於契經中。隨義建立種種名相。今當辨此名義差別。頌曰。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釋曰。心意識體一者。集起名心 謂能集起三業事也。思量名意。了別名識 復有釋言。淨不淨界。種種差別。故名為心(淨者善也。不淨者惡也。界者體也)。即此為他。作所依止。故名為意
      即此者即此心也。將所依義。釋意也。作能依止。故名為識 識能依意也。據上兩解。是心意識三。名義雖異。其體一也。"
  80. 곽철환 2003, "심(心)". 2013년 4월 14일에 확인
    "심(心):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citta
    ① 대상의 전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작용인 심왕(心王)과,